☞ <요 20:21~23>
□ 하나님의 대사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대사로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는 자에게는 반드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하며 자신의 부활을 疑訝(의심스럽고 이상함.)해하는 제자들에게 나타나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손과 창에 찔리시 옆구리를 보여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20절) 그런데 주님은 거기서 끝나지 않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모여 있는 그곳에 다시 나타나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고 있던 도마에게도 못 박히신 손을 보여주시고 손을 내밀어 창 자국 난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27절) 왜 부활하신 주님은 두 번이나 제자들에게 나타나 손의 못 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을 보여주셨을까요?
이것은 우리 주님의 죽음과 부활이 너무나 확실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초대교회 이단들 가운데는 예수님이 죽으신 것이 아니라 기절하였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이라고 말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옆구리 손가락이 들어갈만한 상처를 받고도 주지 않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또 당시 이단들 가운데는 예수님은 영만 부활했지 육체는 부활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영이 손의 못 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을 가지고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영은 살과 뼈가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렇게 손의 못 자국과 창 자국을 보여주심으로 자신의 죽의심과 부활이 역사적으로 확실한 것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부활이 영만의 부활이 아니라 영과 육을 가진 神靈(神奇하고 靈妙한)한 몸으로서의 부활임을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왜 부활하신 주님은 두 번이나 제자들에 나타나 자신의 못 박히셨던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을 보여주셨을까요?
但只(다만. 다른 것이 아니라 오로지. 앞의 말을 받아 예외적인 사항이나 조건을 덧붙일 때 그 말머리에 쓰는 말) 예수님 당신의 죽음과 부활이 확실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까?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대사, 하나님의 대사로 나아가는 자들은 반드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하고 또 그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대사로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대사로 보낸 분이 누구이십니까?
바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확신이 없는 자가 어떻게 하나님의 대사로 세상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고 나를 위해 사흘 만에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다는 이 확신이 없는 자가 어떻게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대사로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나를 보내신 주님이 내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사흘 만에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다는 이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 임마누엘의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라.
그런데 하나님의 대사로 나아가는 자는 부활의 확신만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그 주님이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거닐 때 하나님은 그들보다 앞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출13:22) 하나님은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여 내시는 것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그들과 함께 하셔서 앞서 인도하시며 동행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잡히시기 전날에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내가 보혜사 성령을 보내어 영원토록 너와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을 떠나실 때에도 마지막 유언으로 "볼지어다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함게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b)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주님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영으로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대사로 나아가는 자는 임마누엘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나를 보내신 부활의 주님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 하나님이 사람은 확신의 사람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책임져 주신다는 확신을 가졌기에 바벨론의 왕이 내려준 음식과 포도주를 거절하였습니다.(단1:12~13) 뿐만 아니라 맹렬히 타는 풀무불 속에 던짐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였고, 사자 굴 속에 던짐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전에 하던 대로 하루에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일생을 책임져 주신다는 확신을 가졌기에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와 갈렙 역시 열 명의 偵探꾼들이 "우리는 그 땅을 치지 못한다"고 말하고 甚至於 "우리는 스스로 메뚜기와 같다"라고 말했지만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민13:30b)고 말하였고,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민14:9)고 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사실을 사실대로 보지 않았습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눈에 합한 자였던 다윗 역시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싸워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기에 물맷돌만을 가지고 골리앗을 향하여 돌진할 수 있었습니다.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하여 신발도 신지 못한 채 맨발로 울면서 예루살렘의 감람산을 떠날 때에도 하나님이 모든 상황 가운데서 자신을 지키시고 구원하실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래서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시3:6)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완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시4:8)고 고백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있으면 두려움이 사라지고 담대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 자신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말미암는 확신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확신은 내 자신에 근거한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는 확신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책임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나아갔습니다.(엡3:12)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사명을 勘當할 때까지 하나님께서 자신을 능히 지켜주실 것을 확신하였습니다.(딤후1:12b) 바울은 이 세상의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을 확신하였습니다(롬8:35)
그래서 이렇게 당당히 고백합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갚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 바울은 분명히 "내가 확신하노니"라고 했습니다. "내가 기도하노니" "내가 바라노니"가 아닙니다. "내가 확신하노니"입니다.
그러면 왜 이 확신이 필요할까요?
그것은 이 확신이 있어야 모든 일에 우리가 넉넉히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7) 그 누구도, 그 무엇도, 그 어떤 환경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이 확신을 가진 자가 넉넉히 이깁니다. 간신히 이기는 것이 아니라 넉넉히 이깁니다.
왜냐하면 지금 내가 당하는 苦難보다 지금 내가 경험하고 있는 그 어떤 일보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더욱 크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하나님이 대사로 나아가는 자는 부활의 확신만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그 주님이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
□ 임마누엘 [히Immanuel 이사야에 의하여 예언된 메시아의 이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마> 그리스도가 예언된 救
主)의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라.
의 확신을 가지고낭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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