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0:5~6>
□ 하나님의 대사가 누리는 특권 : 이 집이 平安할지어다.
이 세상의 대사도 자국을 대표하는 대사로 보냄을 받은 자이기 때문에 참 많은 특권을 누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당신의 대사로 이 세상 가운데 보냄을 받은 저와 여러분에게도 많은 특권을 주셨습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5절) 하나님의 대사인 우리에게 주어진 첫 번째 특권은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가장 먼저 평안을 선포하며 비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70인 전도인만이 아니라 12명의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에도 가장 먼저 평안을 빌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0:12) 이것을 보면 하나님의 대사로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평안을 선포하며 비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전도인들을 대사로 파송하시면서 가장 먼저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라고 평안을 빌게 하셨을까요?
첫째, 효과적인 전도를 위해서
왜 주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대사로 이 세상 가운데 보내셨습니까?
바로 영혼을 추수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영혼을 추수하려면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아무리 복음의 내용이 Good News이고 기쁜 소식이라 할지라도 사람들과의 뒤틀려 있으면 누가 그 복음을 받아들이겠습니까?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여 그 영혼을 구원하려면 가장 먼저 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면 좋은 관계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친절해야 합니다. 인사도 잘 해야 하고 주변 사람들과도 和睦하고 덕을 끼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영혼을 구원하겠다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화목하지 못하고 담을 쌓고 지낸다면 누가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겠습니까?
맨날 불평이나 하고 끊임없이 紛爭을 일으킨다면 누가 그 사람이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겠습니까? 아니 그 사람만 나타나면 모두가 緊張을 하게 되고 찬바람이 부는데 누가 그 사람이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대사인 우리는 효과적인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먼저 이웃에게 편안을 빌어 주어야 합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평안을 빌어 주어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먼저 평안을 빌어 주는데 그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둘째,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평안의 복음이기 때문
바울은 에베소서 6장 15절에서 우리가 전하는 이 복음을 "평안의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보냄을 받은 전도인들이 그 집에 들어가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라고 한 말은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믿고 영접하므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 받음으로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원하는간절한 마음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평안은 예수를 믿음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眞情한 평안은 예수 안에서만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우리가 진정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사망 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도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받지 못하면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예수를 영접하면 하나님과 하나님과 영접하게 되고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되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평안의 축복을 아무나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있다고 평안합니까? 높은 지위에 있다고 평안합니까? 많이 배웠다고 평안합니까? 진정한 평안은 하늘에서 내려 옵니다. 진정한 평안은 죄에 죽음의 법에서 해방될 때에만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세상이 줄 수 없는 이 평안을 줄 수 있겠습니까?
바로 그리스도의 대사로 부름 받은 저와 여러분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죄와 죽음 앞에서 두려워 떠는 자들에게, 살아갈 용기마저 잃어버린 채 불안과 恐怖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평안을 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대사는 평안을 선물하는 자입니다. 그리스도의 대사는 평안을 주는 자요. 평안을 빌어주는 평안의 전달자입니다. 결코 평안을 찾아 구걸하는 자가 아닙니다. 평안을 전해주는 하나님 나라 使者입니다.
그러므로 당당하게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그 가정에 "평안이 있을지어다"라고 선포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대사로 보내심을 받은 저와 여러분에게 주신 특권입니다.
셋째, 빈 평안이 머물거나 돌아오기 때문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돌아오리라"(6절) 왜 예수님은 전도인들을 대사로 파송하시면서 가장 먼저 "평안할 지어다" 평안을 빌게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빈 평안이 축복의 말대로 그에게 머무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내게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라고 선포하며 기도하면 우리가 빈 평안이 그에게 머물게 되고 그 집에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의 문을 열고 그 평안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그 평안이 머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6절b) 평안을 받을 사람이 없으면 그 빈 평안이 내게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라고 기도했는데 안타깝게도 이 집에 거하는 사람이 평안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내가 빈 평안이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그렇게 복을 빌어준 내게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대사인 우리는 이제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가장 먼저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라고 선포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 의심하지 말고 선포하며 기도하라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정말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라고 선포하면 정말 평안이 임할까? "이 집이 평안할지아다" 시간적으로 보면 2~3초 밖에 안되는 축복의 말인데 이 축복으로 정말 평안이 임하고 그렇지 않으면 내가 빈 평안이 내게로 돌아올까?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의심하지 않고 확신을 가지고 믿음으로 선포하고 기도하면 말씀대로 이루어집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친히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보냄을 받은 우리가 하나님의 대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70인 전도인을 파송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새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16절) 그들이 비록 이름도 알려져 있지 않은 무명의 평신도들이지만 그들은 곧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그리스도의 대사이기 때문에 그들의 말을 듣는 자는 곧 예수님이 말씀을 듣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하나님의 대사로서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라고 선포하면 예수님께서 그 가정에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라고 선포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대사인 우리에게 동일한 권세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대사인 우리가 믿음을 가직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라고 선포하고 기도하면 그 집에 평안이 임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내게 그 평안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대사가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
和睦 : 서로 뜻이 맞고 정다움.
紛爭 : 말썽을 일으키어 시끄럽고 복잡하게 다툼.
眞情 : 참되고 애틋한 정이나 마음.참된 사정.
使者 : 명령이나 부탁을 받고 심부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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