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눅 10:10~16>
□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예수님은 복음을 듣고도 복음을 拒否하고 복음 지도자를 영접하지 않는 자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법하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10절) 여기서 "너희를 영접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이 전하는 平安의 복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복음을 거부하므로 너희를 영접하지 않는 자들에게 대해서는 "거리로 나와서 말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복음을 거부하고 영접하지 않았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전한 복음을 그 사람들이 거부했다는 것을 마을 사람 모두에게 공개적으로 알리기 위해 그렇게 한 것입니다. 다음엔 "발에 묻은 먼지도 떨어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11절) 발에 묻은 먼지를 떨어 버리는 행위는 이제 복으을 전한 자신에게는 전혀 책임이 없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宣言하는 一種의 퍼포먼스입니다. 너희가 복음을 영접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어떤 심판을 받든지 이제 나와는 相關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이 전적으로 복음을 거부한 그들에게 있음을 선언하는 상징적인 행위인 것입니다.
□ 그러나 알라
이어 예수님은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11절b) 그들이 마음의 문을 닫고 복음을 받아 들이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러나 이것만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아무리 마음을 닫고 복음을 거부해도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이제라도 마음의 문을 열고 회개하고 복음을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한 영혼이라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들이 아무리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해도 하나님의 나라는 저지될 수 없고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악의 권세도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시작되는 그 하나님의 나라를 막을 수 없습니다.
□ 복음을 거부한 세 城邑
1. 고라신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13절a) 고라신을 가버나움으로부터 북서쪽으로 약 4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이 곳에서 어러마나 머무셨고 어떤 일들을 행하셨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그런데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회개하였으리라"는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相當한 관심과 愛情을 가지시고 이곳에서 많은 權能을 행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벳새다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13절a) 벳세다는 갈리리 호수 북동쪽에 위치한 성읍으로 베드로와 안드레, 빌립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예수님은 그곳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도 고치혔습니다.
3. 가버나움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서 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서까지 낮아지리라"(15절)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갈릴리 선교 사역의 중심지가 되었던 곳입니다.예수님은 그곳에서 百夫長의 종을 고치시고 백부장의 믿음도 칭찬하셨습니다. 죽은 나인성 과부의 아들도 살리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고라신, 벳새대, 가버나움에서 천국 복음을 전하셨고 많은 권능을 행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마음의 문을 닫고 복음을 거부하였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복음을 들었지만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 복음을 거부한 자들이 받을 심판
예수님은 복음을 거부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잗들이 그 날에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보다 견기디 어려운 심판을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12절) 그리고 두로와 시도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심판을 받는다고 말씀하여셨습니다.(14절) 이렇게 복음을듣고도 거부한 자들이 소돔과 고모라보다, 두로와 시돈보다 견디기 어려운 심판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에도 差等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公義로우신 하나님은 모든 사람은 동일하게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계시를 받은 양에 따라 심판하십니다. 복음을 듣고 또 주님이 행하신 일을 보고서도 예수를 영접하지 않는 자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크고 견디기 어려운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천국에도 상급의 차별이 있듯이 지옥의 심판도 차별이 있습니다.(계20:12b)
□ 驕慢은 敗亡의 先鋒이다.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陰府에까지 낮아지리라"(15절) 예수님은 가버나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시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셀 수 없을 만큼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거부하였습니다.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행위를 하늘에 까지 높아지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교만 때문에 복음을 거부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복음을 들었고 그 많은 기적을 경험하엿지만 회개하지 않고 예수님에게 등을 돌린 것을 바로 교만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왜 천사가 타락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까?(사14:13a) 왜 인류의 시조인 아담이 타락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까?
왜 오늘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도 예수님을 거부하고 영접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교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도 살 수 있다는 교만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늘에까지 높아진 가버나움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였습니까?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여기서 음부는 곧 지옥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늘에까지 높아진 교만 때문에 복음을 거부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자는 결국 음부에까지 낮아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가장 큰 저주와 비참함은 지옥에까지 내려가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잠16:18a)
□ 하나님의 대사여 심판을 말하라
예수님은 70인 전도인을 파송하시면서 가서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이 받을 심판에 대항 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심판에 대한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굿 뉴스, 좋은 기쁨의 소식만을 듣고 싶어 합니다. 아니 심판을 말하면 화를 내고 기분 나빠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대사인 우리는 심판에 대하여 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언제나 심판과 함께 증거되어야 복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판이 없는 복음을 복음이 아닙니다. ◑
相當 : 일정한 액수나 수치 따위에 해당함.
愛情 : 사랑하는 마음. 남녀 간에 서로 그리워하는 마음. 그런 일.
權能 : 권세와 능력. 권리를 주장하고 행사할 수 있는 능력.
百夫長 : 로마 군대의 조직 가운데 100명으로 조직된 단위 부대의 우두머리.
差等 : 고르거나 가지런하지 않고 차별이 있음. 그렇게 대함.
公義 : 公平하고 의로운 道義.
'오륜교회[2] 2008.'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하라 / 제31권 14호. 2019.04.07. (0) | 2019.05.01 |
---|---|
하나님의 대사여, 기뻐하라 / 김은호 목사 제31권 11호. 2019.03.17. (0) | 2019.04.09 |
하나님의 대사여, 가서 특권을 누리라② 김은호 목사 / 제31권 9호 2019.3.3 (0) | 2019.03.04 |
하나님이 대사여, 가서 特權을 누리라ⓛ / 김은호 목사 / 제31권 8호 / 2019.2.24. (0) | 2019.02.26 |
하나님의 대사여, 가라 주님이 책임져 주신다 / 김은호 목사 / 제31권 7호 / 2019.2.170-. (0) | 2019.0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