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눅 10:17~20>
♣ 70인이 기뻐하며 돌아오다
예수님은 70인 전도인을 세우사 자신이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보냄을 받은 70인 전도인들이 돌아와 예수님께 보고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보냄을 받은 70인 전도인들이 돌아와 예수님께 보고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돌아왔습니까? 기뻐하며 돌아왔습니다.(17절) 돌아올 때의 모습이 기쁨으로 충만해 있었습니다. 처음에 떠날 때에는 전대와 배낭과 신발도 가지지 않은 초라한 모습으로 떠났습니다. 많은 두려움도 안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70인 전도인들은 떠날 때의 모습보다 돌아올 때의 모습이 더 중요한 가운데 돌아왔습니다. 이것을 보면 떠날 때의 모습보다 돌아올 때의 모습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시험을 치르는 사람도 보면 시험장에 들어갈 때의 모습보다 시험을 치르고, 면접을 치르고, 면접을 치르고 나올 때의 모습이 더 중요합니다.
♣ 귀신들의 항복
그러면 왜 70인 전도인은 그토록 기뻐하며 돌아와 예수님께 전도 보고를 하였을까요?
그들이 그토록 기뻐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귀신들의 항복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현장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귀신들린 자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자 귀신들이 항복하였습니다. 귀신들이 항복했다는 것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였을 때 더러운 귀신들이 떠나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대사로 보냄을 받은 전도인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명령할 때 병든 자가 고침을 받고 귀신들이 떠나가는 것을 자신들의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 기쁨으로 돌아와 흥분된 목소리로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라고 보고를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는 왜 이런 기쁨과 감격이 없을까요? 왜 이런 간증이 없을까요?
그 이유는 오늘 나에게 전도의 현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덮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대적하는 영적 전쟁의 현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듣기만 하고 복음을 전하는 영적 전쟁의 현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의 연 수를 자랑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순종하여 복음을 듣고 나아가 보십시오. 우리는 그 현장에서 핍박도 당하지만 귀신들이 나에게 항복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면 준비된 영혼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한 영혼이 주께로 돌아오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 내가 보았노라
기쁨으로 돌아와 흥분된 목소리로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라고 보고를 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18절) 예수님은 전도인들이 보냄을 받은 현장에서 귀신을 쫓아낼 때 귀신들의 우두머리인 사탄이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여기서 보았다는 말이 미완료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전도인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신 다음에도 '계속적으로 지켜보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그들이 나아와 귀신의 항복 소식을 말하기 전에 이미 복음을 전하는 영적 전투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라고 말씀한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를 보내시고 방관하지 않으셨습니다. 나 몰라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무관심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그 전도의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영적 전투의 현장을 집중력을 가지고 뚫어지게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영적 전투의 현장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고난과 고통의 현장도 보고 계십니다.
막 6장을 보면 예수님은 풍랑을 만나 괴로이(몸이나 마음이 편하지 않고 고통스럽게) 노를 젓고 있는 제자들을 보셨습니다. 깊은 밤, 육지에서 십리나 떨어진 바다 한복판에서 괴로이 노를 젓고 있는 제자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주님은 보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밤 4경(새벽 3시~6시)에 물 위를 걸어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가 누군가의 영혼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고 그 사람에게 나아가 복음을 전할 때 그 영적 전투의 현장을 뚫어지게 바라보십니다. 아니 인생의 풍랑을 만나 힘겹게 노를 젓고 있는 당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인생이 힘들고 고난이 겹칠 때 결코 나 혼자라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주님은 짖금 당신의 삶의 현장을 보고 계십니다.
♣ 하나님의 자녀 된 자에게 주어진 권세
예수님께서 전도자들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셨습니다.(19절) 여기서 뱀과 전갈은 사탄과 그를 따르는 졸개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사탄의 세력을 상징하는 뱀과 전갈을 밟는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밟은 다는 것은 곧 승리를 말합니다. 따라서 뱀과 전갈을 밟는다는 것은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가 주어졌음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대사로 보냄을 받은 저와 여러분에게는 법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가 이미 주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권세를 누가 주었습니까? "내가 너희에게.... 주었으니" 마귀의 일을 멸시고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엄청난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분명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가진 사람입니다.
♣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예수님은 70인 전도인들이 귀신들이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할 때에 그것으로만 기뻐하지 말고 그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20절) 이 말씀은 귀신들의 항복으로 말미암은 기쁨이 필요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복음의 증거로 인한 기쁨도 필요합니다.사역의 열매로 인한 기쁨도 필요합니다. 성령의 은사와 능력으로 말미암는 기쁨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보다 더 엄청난 기쁨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기쁨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기쁨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저와 여러분의 이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말합니다. 천국 백성이 되었음을 말합니다.. 구원을 받았음을 말합니다.
그러러므로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는 말은 내가 구원을 받았다는 그 사실, 천국 백성이 되었다는 그 사실을 인하여 더 기뻐하라는 것입니다.하나님의 대사로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우리는 사역으로 인한 기쁨도 누려야 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말고 내가 구원 받은 사실을 인하여 더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사역으로 인한 기쁨은 오래가지 못하지만 구원의 기쁨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대사는 사역으로만 기뻐하지 말고 은사와 능력으로만 기뻐하지 말고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신 그 구원의 은총을 인하여 기뻐하며 살아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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