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不孝子는 웁니다! - [노흥규 동부지회. 제195호. 2021.5.15]

꿈 꾸는 소년 2021. 7. 27. 10:19

  '나무는 고요하기를 願하지만 바람이 가만히 두지 아니하고, 부모님을 섬기고자 하였더니 세월이 기다려 주지 아니하더라.'

  중국 한나라 때 한영이라는 사람이 지은  <한시외전>에 나오는 말이다. 인생을 덤으로 산다는 古稀, 칠십을 넘기고 보면 부모님은 생로병사의 인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돌아가시고, 그 빈자리를 돌아보며 더 잘해드리고, 더 잘 섬기고 모시지 못한 후회는 마음속에 무거운 앙금처럼 남게 된다.

  나에게도 아버지에 대한 못다 한 애틋한 마음이 지울 수 없는 悔恨으로 남아 平生을 후회하는 일이 하나 있다.

  내 나이가 것 서른에 접어든 1978년 8월 중순경으로 기억한다. 날씨는 찌는 듯 무덥고 공기는 습하여 몸도 마음도 지치게 하는 날이었다. 

 아버지께서는 나를 부르시더니 조용히 그러나 무슨 決斷을 내리신 듯 말씀하시기를 土種 산 멧돼지 한 마리가 있는데 엄청나게 커서 삼백 근은 足히 나간다고 하셨다. 가격은 100만 원인데 사기로 하고 계약까지 하였다는 말씀이셨다. 

 나는 內心 크게 놀라서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아버지, 저는 그런 큰돈이 없는데요."

 아버지가 멧돼지를 사시면 돈은 내가 내야 할 것 이기에 걱정이 되어서 드린 말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餘裕 있는 微笑까지 지으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멧돼지를 공짜로, 아니 얼마의 돈까지 챙길 수 있다며 하시는 말씀을 듣고 나서는 새삼 感歎하지 않을 수 없었다.

 野生 멧돼지의 쓸개는 持病이 있는 사람이 약으로 쓰기 위해서 60만원에 가져가기로 했고, 고기는 몇 사람이 나누어 가져가면 40~50만 원은 充分하게 나오고, 게다가 멧돼지의 外形은 剝製를 하면 高價에 팔 수가 있으니 돈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아버지의 말씀에 나는 큰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홀가분한 마음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智略에 가까운 計算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當時 아버지께서는 암 鬪病 중이셨다. 췌장암 3기로 淋巴腺으로 轉移된 狀態여서 5년 이상 生存할 가능성이 5% 미만이라는 의사의 診斷을 받고 있었다. 이 사실은 의사와 나만이 아는 사실이었다. 아버지께서는 가끔 아프다는 말씀만 하실 뿐이어서 子息인 나는 아버지를 바라보기 조차 힘든 하루하루 보내고 있던 때였다. 

 지금보다 의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그 당시는 암은 걸리면 죽는 恐怖의 병이었다. 지금도  췌장암은 完治되는 약이 없고, 생존의 가능성도 稀薄하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암을 치료한다는 온갖 民間療法나 雨後竹筍처럼 亂舞하였고, 患者나 가족들은 물에 빠진 사람이 지프라기라도 잡는 心情으로 민간요법에 매달리고 依支하게 되었다.

 이런 切迫하고 切實한 마음을 노려 민간요법으로 登場한 것이 굼벵이나 산 멧돼지 쓸개, 구하기 힘든 산삼이나 움담이 암에 특효라는 信仰 같은 믿음을 갖고 있던 時節이었다.

 암에 걸려 苦痛을 겪고 계시던 아버지 또한 왜 멧돼지의 쓸개를 잡수고 싶은 욕심이나 절실함이 없으셨겠는가?

 그때 나는 '쓸개는 아버지가 드세요.' 이 한마디를 말을 왜 못하였을까? 말씀은 안 하셨어도 마음으로 얼마나 서운하셨고, 돈만 챙기려는 이 못난 자식을 怨望하셨을까? 지금은 섬기고자 하나 세월이 기다려주지 않아 아니 계신 아버지, 내 머리, 내 가슴뿐만 아니라 내 肉身을 모두 바쳐서라도 단 한 번이라도 아버지께 효도하고 싶은 절실하고 懇切한 마음이다.  아버지, 이 불효한 자식을 容恕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