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家族史를 整理하며

꿈 꾸는 소년 2021. 8. 22. 05:05

  70代 中盤에 접어들어 지난 일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철렁할 때가 있다. 停年退職을 한 지 於焉 16년이라니 歲月은 고속전철처럼 빠르기도 하다.

  職場 生活에 쫓길 때도 子息들과의 만남은 用돈 건넬 때 기억뿐인데, 結婚해서 獨立을 하니 空虛함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자식들에게 世代差라는 말을 들으며 葛藤도 많이 했었다. 가난과 함께했던 아버지 時代의 經驗과 追憶들을 그들은 전혀 理解하지를 못한다.    옛날에는 父母와 따로 사는 問題를 입에 담는 것조차 不孝였지만, 지금은 자식들 奉養을 바라는 것 自體가 부질없는 慾心으로 여겨진다. 孝의 意味에 대한 世代 間 隔差가 너무 멀어졌을까? '제사는 우리 세대가 끝이다'라는 말이 안온지 이미 오래다. 자식들에게 祖上 祭祀를 强要할 수는 없는 것 같다. 忌日에 부모님을 떠올리고 싶어도 자식들이 가진 추억은 貧弱할 뿐이다. 그렇다고 넉넉한 財産을 물려줄 處地는 되지 못하고, 퇴직 후 餘裕시간에 家族史를 만들어 자식들에게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多幸히 나는 아버지를 닮아 무엇이든지 모다두는 習慣이 있다. 平生 모아둔 資料를 정리하며 아버지가 保管했던 자료부터 챙기기로 했다. 오래된 族譜들, 그것을 根據로 하여 3家(本家, 外家, 妻家)의 家系圖를 나를 基準으로 하여 재정리해보았는데, 대학노트로 여러 券이 된다.

  족보 정리는 내가 누구인지를 다시 한번 알게 되는 契機가 되었다.

  아버지의 1926년 공립보통학교 通知簿와 受業證書, 아버지가 貯金했던 상업은행 通帳, 부모님 結婚寫眞, 卒業 album, 祖母 別世 時 賻儀錄 등 多數다. 特히 아버지가 쓰시던 낡은 가죽지갑을 對하면 아버님을 뵙는 것 같아 추억이 새롭게 느껴진다.

  나의 學窓生活은 勿論 會社 在職 時의 자료도 꽤 많이 남아 있다. 1968년 入社 後 退職 時까지 35년간의 金錢記錄簿, 俸給 封套가 명 券이나 된다. 아이들에게 菓子값, 學用品값 等을 支出한 것도 全部 記錄으로 정리해두었다.

  平素 瞬間瞬間의 생활을 撮影하여 아이들 成長過程의 앨범도 많이 있다. 내가 자랐던 곳, 내가 네 살때(1950년) 살았던 밀양 집이 아직도 남아있어 感慨無量했다. 그 사진은 늘 寫眞帖 첫 章을 裝飾하고 있다. 

  자식들 자료도 相當히 많아 자식들이 태어난 病院 全景 사진, 診療 領受證, 育兒日記, 자랄 때 뒤집기*배밀이* 기어 다니기*앉기*걷기 시작으로 이어지는 성장과정을 보니 江山이 여러 번 바뀐 게 實感이 나기도 한다.

  어린이집에서부터 대학교까지의 年度, 學校名, 擔任先生님의 이름도 남아있다. 학교 통지표, 각종 賞과 賞壯, 日記帳, 兵務廳 徵集通知書 사진들***

  訓練所에서 보내온 私製 옷 封套에 남은 얼룩은 아들의 눈물 자국인지 아내의 것인지 모르겠다. 休家 나온 아들 軍服 바지 주머니에서 나온 M16 零點調整 타깃을 보니 녀석이 名射手는 아닌 듯하다.

  첫째 아들의 여러 번의 입사시험과 직장 생활, 개인사업 등의 사회활동, 둘째(개그맨 하박)의 웃찾사[웃음을 찾는 사람들], 옹알스[개그맨 멤버 조수원, 채경선, 조준우, 최기섭, 하박, 이경섭, 최진영 ] 共演 等 ** 옛 文書들을 보면서 자식들에게 옛 추억을 남긴다는 것은 아주 잘한 것으로 본다. 자식들이 먼 훗날 부모의 삶을 돌이켜 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를 닮아 자료를 챙기듯이 자식들도 나를 닮아 그들 자식에게 가족사를 남기라고 하는 것은 나의 慾心은 아닐지? 자식들이 가족사 정리를 付託할 리는 萬無하겠지만 나이 들어 더 이상 기억이 흐려지기 전이라면 더욱더 좋을 것으로 생각한다. 지금은 살아가는데 餘裕가 없겠지만 먼 훗날에는 부모의 삶에 대해 돌이켜 볼 일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참에 지나온 나의 가족의 이야기들을 參考하여 전우회원께도 勸誘하고 싶다. 이 나이에 무엇을 하겠느냐는 생각을 버리자, 내가 없는 후엔 알아서 하겠지 하는 思考方式도 버려야 할 것이다.

  只今 부산지회는 지회 40년사 發刊을 準備하고 있다. 회장님 以下 많은 회원들이 同參하고 있지만 자료蒐集에 隘路가 적지 않다. 눈을 부릅뜨고 자료를 찾는 회원들을 보면 고맙기도 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록이 전우회 전체 역사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현재 지회 홍보위원으로서 지회 카페 운영자로 활동하면서 먼 훗날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각종 행사 사진 15만 장을 확보하고 있다. 지난 기록들은 개인의 생각보다 實體가 중요함을 되새겨 보고 싶다.

  아무것도 이룬 게 없더라도 살아있는 동안이라도 멋진 有終의 美을 준비하자. 지금부터라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시작이 반이라 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