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 11:17~19>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18.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를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 아브라함의 시험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시험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던 시험은 무엇입니까? 100세에 낳은 사랑하는 아들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 가서 燔祭物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창22:2). 하나님의 이런 명령은 아브라함에게 靑天霹靂과 같은 말씀이었습니다. 눈에 아프지 않을 사랑하는 아들 그것도 독자 이삭을 어떻게 번제물로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이런 명령에 No.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에 Yes.로 대답하였습니다. 그리고 곧 바로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아들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이 지시하신 모리아산으로 향하여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습니다(17절). 아브라함은 到底히 이해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하나님이 말씀 앞에 토를 달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명령에 조건없이 Yes.를 하였습니다.
□ 순종의 核心 = 믿음
그러면 아브라함이 이렇게 하나님께 Yes.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바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17절a)"
아브라함이 이렇게 하나님의 명령에 Yes.할 수 있었던 것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누구도 Yes.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순종의 핵심은 바로 믿음입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믿음 = 축복, 믿음 = 능력이다' 라는 공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勿論 이 말이 틀린 말이 아닙니다. 믿음은 결국 우리에게 축복과 능력을 가져다 줍니다. 그러나 순종의 과정이 없이 축복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순종이라는 과정이 없이 능력은 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믿음으로 순종하였기에 축복을 받을 수 있었고 능력이 임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곧 순종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없이는 결코 순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순종을 위하여 가져야 하는 민음
첫째로, 전능하신 하나님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Yes.할 수 있었던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19절a)" 아브라함이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것이라는 분명한 믿음이 아브라함에게 있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명령 앞에 Yes.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목사이고 장로이고 모태신앙일지라도 하나님을 향한 이런 믿음이 없으면 절대로 Yes.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능치 못한 일이 없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으로 하나님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고 풍랑을 잔잔케 하시고 보리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명을 먹이고도 12바구니를 남기게 하신 분이십니다.
아니 기브온 골짜기에 태양을 멈추게 하신 분이십니다.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라" 하나님을 나의 이성과 상식으로 제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에게 바로 믿음이 있었기에 하나님께 Yes.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로, 좋으신 하나님
누가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토를 달지 않고 Yes.하며 순종할 수 있습니까? 내가 믿는 하나님이 좋으신 하나님, 善하신 하나님이라는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Yes.하며 순종 할 수 있는 것은 그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좋으신 하나님, 선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선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7:11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11)" 하늘에 계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육신의 부모보다 더 좋은 것 주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참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참 좋으신 하나님이시기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롬8:28).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와 넘어짐 약함 심지어는 상처까지 合力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은 참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믿음이 있으면 누구든지 Yes.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순종의 핵심은 믿음입니다.
□ 믿음의 근거 = 약속의 말씀
그러면 언제 이 믿음이 우리 가운데 생깁니까? 아니 아브라함은 어떻게 해서 독자 이삭을 바칠 수 있는 믿음을 가졌을까요? 그것은 약속의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 약속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18절)" 이 약속의 말씀이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바칠 수 있는 믿음을 각게 만든 것입니다. 눅5장을 보면 베드로도 말씀에 의지하여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렸던 것입니다. 말씀을 붙잡을 때 믿음이 생깁니다. 문제를 붙잡으면 문제만 커 보이고 사람을 붙잡으면 사람만 보이지만 말씀을 붙잡으면 믿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10:17절에서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19절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Yes.로 순종하였을 때 받은 축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19절b)" 아브라함은 순종을 통하여 아들 이삭을 다시 돌려 받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아들 독자 이삭의 손을 잡고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순종 이후 아들이 달라져 보였습니다. 아들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아들에 대한 아버지 아브라함의 생각이 달라진 것입니다. 손을 잡고 모리아산을 내려오는 아들 이삭은 이제 나의 소유 나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죽었어야 할 자식인데 여호와 이레 하나님의 은혜로 살게된 자식이었습니다. 내가 낳은 아들이지만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죽은 자 가운데 도로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돌려 받으면 이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순종의 축복은 아들 이삭을 다시 돌려 받은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날의 순종을 통하여 생각이 바뀌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께 Yes.하고 순종하며 나아가면 다시 돌려받는 축복이 임합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나의 시간, 물질, 가정, 자녀, 일터, 비전에 대한 나의 생각들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은혜의 관점에서 그것들을 새롭게 재해석할 수 있는 안목이 생겨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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