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

행복의 代價를 支佛하라<2011년 1월 30일 / 제 23권 5호>

꿈 꾸는 소년 2011. 2. 6. 16:54

☞ <창 12:1~4>

 

 □ 부르심의 恩惠

 

 본문은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어떻게 부르셨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라는 지역에서 하나님과는 全혀 相關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데라는 하나님이 가장 可憎이 여기시는 우상을 만들어 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 역시 偶像을 만들어 파는 가정에서 우상을 崇拜하며 살았던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너는 너의 고향과 親戚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창12:1)"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나님과는 전혀 상관이 없던 사람, 그것도 우상을 만들어 팔아 먹고 살아가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부르심의 은혜라고 표현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시고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불러 주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사실 아브라함만 부르심의 은혜를 입은 것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 역시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1:15절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어머니의 태로부터 擇定하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셨다"고 말하였습니다. 

 

 □ 약속을 따라 부르심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그냥 부르신 것이 아니라 약속을 따라 부르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내가 너로 민족을 이루리라

 이 말씀은 아들이 없던 아브라함에게 자녀의 축복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자녀가 生育하고 繁盛하여 이스라엘이라는 한 나라를 이루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하여 메시야인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다스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둘째로, 네 이름을 昌大케 하리라

 이 말씀은 이름을 크게 떨치는 卓越한 존재가 되게 해 줄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를 보면 사람으로서는 감히 얻을 수 없는 복된 이름들을 얻었습니다. 그는 먼저 "하나님으 벗(약2:23)"이라는 호칭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민족의 아버지(창17:4~5)"라는 榮華로운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 보다 더 중요한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榮譽를 얻었습니다.

 

 셋째로, 복이 될지라

 너는 복이 될지라는 말씀은 축복의 통로가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너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네가 축복의 통로이기 때문에 너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유익을 얻고 평안을 얻고 위로를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너로 축복의 통로로 세웠기 때문에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3절).

 

 □ 순종에는 대가가 필요하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이렇게 榮光스럽고 偉大한 복을 받아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순종의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습니다. 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Yes라고 대답하지 못합니까? 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합니까? 몰라서입니까? 물론 몰라서 순종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은 알면서도 순종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순종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서 순종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순종하기 우해서는 반드시 치루어야 할 대가각 있습니다.

 야곱도 사랑하는 라헬을 얻기 위해 라반의 집에서 14년을 봉사해야만 했습니다. 바울도 우리를 와서 도우라는 성령의 지시를 따라 빌립보로 들어온 다음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는 대가를 치루어야만 했습니다. 노아도 120년동안 왕따를 당하며 방주를 짓는 수고를 해야만 했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이 세가지 축복을 누리기 위해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습니다.

 

 □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

 

 그러면 아브라함이 이 약속된 복을 누리기 위해서 이루어야 할 대가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고향과 친천과 아비집을 떠나는 것이었습니다(창12:1). 당시에 자기가 살던 고향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간다는 것은 목숨을 건 모험이었습니다. 게다가 아브라함이 살던 갈대아 우르는 문명이 발달된 최첨단의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곳을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고향만이 아니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은 과거의 대명사입니다. 그러므로 과거를 떠나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축복의 통로가 되는 삶을 살려면 먼저 과거로부터 분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려면 먼저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살았던 세상과가 訣別을 하셔야 합니다. 정말 창대케 되기를 원한다면 정말 축복의 통로로 쓰임받기를 원한다면 과거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세상과 분리되는 것이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떠나야 합니다. 떠나지 않으면 분리되지 않으면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없습니다. 물론 대가를 치루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Yes를 하고 순종하였던 사람들은 우리가 상상 할 수 없는 많은 은혜와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치루는 대가는 행복한 대가인 것입니다.

 

 □ 왜 행복한 대가인가?

 

 첫째로, 나의 순종의 대가가 주님이 치루신 대가에 비해 너무 작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을 위해 나를 위해 말로는표현할 수 없는 큰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하나님이신 주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찾아오시는 대가를 지불하셔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고난 받으시고 죽으심으로 내가 받아야 할 지옥의 형벌과 고통의 대가를 대신 지불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오늘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어떤 큰 대가를 치루더라도 그것은 주님이 나를 위해 대가를 지불하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둘째로, 내가 지불한 것 보다 더 많은 복을 받아 누리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를 위해 대가를 지불하면 대가보다 더 많은 복을 받아 누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대가를 지불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지불한 것보다 몇 배나 많은 것으로 우리에게 갚아주십니다. 우리의 순종의 대가보다 불순종의 대가가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순종에는 반드시 대가가 지불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또한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불순종의 대가는 순종의 대가보다 훨씬 더 크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지불하는 대가는 행복한 대가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