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 14:15, 21>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誡命을 지키라. 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면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 즐겨 순종하라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순종은 즐거움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所産을 먹을 것이요(사1:19)" 즐겨 순종하는 것은 은혜로 인한 순종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순종은 율법적 순종이 아닙니다. 순종하지 않았다가는 懲戒를 당할것 같고 손해를 볼 것 같고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것 같으니까 어쩔 수 없이 마지 못해 하는 순종이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순종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즐겨 순종하는 순종입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였씁니다.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언제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씁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전에 나아와 수 없이 많은 짐승들을 제물로 드리며 제사를 드릴 때입니다. 다시 말해 마음이 없는 형식적인 예배를 꾸짖으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것을 보면 우리 하나님은 마음이 담기지 않은 형식적인 예배를 싫어하십니다. 不義와 罪惡을 행하면서 敬虔의 모양만 갖춰서 드리는 僞善的인 예배를 싫어하십니다. 마찬가리로 우리 하나님은 아무리 우리가 순종을 많이 해도 그 모든 순종을 다 받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쁨으로 즐겨 순종하지 않는 순종은 하나님이 싫어하십니다. 그러므로 순종은 순종 그 자체보다 어떻게 순종하는냐가 더 중요합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假飾的인 순종은 嚴密한 의미에서 순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순종은 즐겨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즐겨 순종하는 자가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게 될 것입니다.
□ 사랑으로 순종하라
그러면 누가 하나님의 말씀에 즐겨 순종할 수 있습니까? 누가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즐거움으로 Yes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요14:15에서 이렇게 말씀하였씁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14:15)" 사랑과 순종은 수레의 양 바퀴와 같습니다. 사랑과 순종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사랑은 하지만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5: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한일서 5: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하기 때문에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그 어떤 계명도 무겁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그 사람이 얼마나 말씀에 순종하는냐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입술로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해도 삶이 순종이 없다면 그 사람은 주님을 사랑하는 자가 결코 아닙니다.
순종이 동기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① 무서워서 ② 필요해서 ③ 사랑해서 여러분의 순종의 동기는 무엇입니까? 무서워서 입니까? 아니면 필요해서입니까? 아니면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까? 우리의 순종의 동기는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순종이란 예수님에 대한 사랑의 응답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순종하면 기쁨으로 순종할 수 있습니다. 즐겨 순종할 수 있습니다.
순종의 동기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낙심과 절망 가운데 고향으로 돌아가고 고기를 잡고 있던 베드로를 찾아가 3번이나 반복하여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는냐"고 물으셨던 것입니다. 왜 주님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그 새벽 시간에 찾아오셔서 한 번이 아니라 세 번이나 반복하여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을까요? 죄를 드러내기 위해서 일까요? 그때의 상황을 다시 떠올리게 하여 상처를 주도록 하기 위해서 일까요? 아닙니다. 주님이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것은 신앙생활의 동기는 바로 사랑이여야 함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입니다. 사역의 동기, 순종의 동기는 바로 사랑이어야 함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의 말씀 앞에 Yes하며 준종하는 일은 주님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할 수 없습니다. 순종의 동기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조이 도우슨은 우리의 핵심은 "성공이 아니라 순종이다"라고 말했습니다.
□ 사랑으로 순종하는 자가 받는 복
첫째로,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는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요14"21절a)" 사람은 사랑은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사랑의 본체이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은 떡으로만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랑받지 못하면 그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높은 지위를 가졌고 명문대학을 나오고 좋은 직장에 다니고 좋은 환경 가운데 산다 할지라도 사랑받지 못하면 불행합니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사랑받을 때 행복을 느끼고, 존재의 이유를 알게 되고, 喜悅을 느낍니다. 이렇게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아도 행복해지고 삶의 여유가 생기고 희열이 생기는데 천지를 지은신 전능하신 하나님, 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의 사랑을 받으면 인생을 산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피조물의 최고의 행복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 사랑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인생의 행복은 돈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성경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고백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누가 더 느끼면서 살아갑니까? 누가 이런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며 살아갑니까? 누가 날마다 이런 주님의 사랑의 고백을 들을 수 있습니까? 순종하는 자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는 자입니다. 사랑으로 순종하는 자가 아버지의 사랑을 더 깊이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면 사랑으로 순종하십시오.
둘째로, 자신을 나타내 보여주신다.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태내리라((요14:21b)" 사실 사랑하면 그 동안 안보이던 것이 누군가을 사랑하면 보입니다. 사랑하지 않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누군가를 사랑하면 보입니다. 사랑하면 그 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여집니다. 주님을 사랑하기에 즐겨 순종하면 율법적인 순종으로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보여지기 시작합니다. 주님께서 행사하는 일들이 보여지기 시작합니다. 새로운 신앙세계가 열려지기 시작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면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보여집니다. 말씀을 묵상할 때 주님의 음성이 더 분명하게 들려옵니다. 전도의 현장에서 주님께서 자신을 나타내 주시면 의심이 사라지고 귀신들이 떠나가고 병든 자가 고침을 받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주님을 이전 보다 더 사랑하고 그 주님을 사랑하기에 즐겨 순종하면 삶의 현장에서 성령의 나타남을 볼 수 있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나를 위해 일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전과는 다른 신앙생활을 하고 싶다면 이전 보다 더 주님을 사랑하셔야 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즐겨 순종하셔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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