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

이 시대의 모세와 선지자가 되라<2011.6.6 / 제23권 23호>

꿈 꾸는 소년 2011. 6. 16. 11:07

☞ <눅 16:19~31>

 

 □ 이 세상은 평등하지 않다 그러나 죽음은 평등하다.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을 따라 평등하게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헌법 11조 1항에도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라고 明示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실제로 평등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도 두 주인공이 나오는데 한 사람은 부자이고 또 한사람은 나사로라는 이름을 가진 거지입니다. 부자는 부자답게 자색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운 잔치를 베풀며 인생을 즐기며 살았습니다(19절). 하지만 거지 나사로는 그 부자의 집 대문 앞에 버려진 채로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음식찌꺼기로 虛飢진 배를 채우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20~21절). 부자와 거지 나사로 얼마나 대조적인 삶입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평등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죽음은 평등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부자도 죽고 거지 나사로도 죽었습니다(22절). 이 세상은 평등하지 않지만 죽음은 평등합니다. 이 세상의 탄생은 평등하지 않지만 죽음은 평등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평등한 것이 있다면 바로 죽음입니다. 부자도 죽고 가난한 자도 죽습니다, 많이 배운 자도 죽고 배우지 못한 자도 죽습니다. 나이가 든 사람도 죽고 갓난 아이도 죽습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도 죽고 실패한 사람도 죽습니다. 어떤 사람은 교통사고로 죽고, 어떤 사람은 암으로 세사을 떠나고, 어떤 사람은 누군가에 의해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이렇게 죽음의 모습과 상황이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모든 사람은 죽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세상에 죽음만큼 확실하게 평등한 것은 없습니다.

 

 □ 죽음은 끝이 아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는 또 하나의 교훈은 바로 죽음은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음은 끝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생이 힘들고 어려우면 쉽게 자살을 서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죽음을 滅絶이 아닙니다. 죽음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은 영원한 세계의 시작입니다. 그러면 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세계의 시작입니까?

 그것은 죽음이 육체로부터 영혼이 떠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도 보면 거지 나사로가 먼저 죽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천사들이 그 영혼을 받을어 아브라함의 품으로 인도하였습니다(22절). 아브라함의 품은 곧 천국을 말합니다. 그런데 왜 성경은 천국을 아브라함의 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요? 그것은 나사로가 아브라함이 가졌던 믿음과 동일한 믿음을 가져 아브라함과 함께 있게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믿으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갈3:9)" 거지 나사로가 천국에 들어가게 된 것은 그가 가난한 거지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가졌던 믿음과 동일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아브람함이 가졌던 믿음을 가졌기에 그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는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부자는 죽어 어떻게 되었을까요? 부자의 영혼은 음부에 떨어졌습니다. 음부는 곧 지옥을 말합니다.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죽음은 끝이라는 말에 속지 마십시오.

 

 □ 지옥은 어떤 곳인가?

 

 첫째로, 고통이 있는 곳.

 음부, 곧 지옥에 떨어진 부자는 고통 중에 있었습니다. 지옥은 죽은 영혼이 편안히 쉬는 곳이 아닙니다. 지옥은 죽은 영혼이 편히 잠을 자는 곳이 아닙니다. 지옥은 고통이 장소입니다. 괴로움의 장소입니다. 그러면 어떤 고통과 괴로움을 받을까요? 

 ① 불이 고통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24절b)" 이 부자는 지옥의 불못에 떨어져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고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지옥을 말할 때마다 언제나 불을 말합니다.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21:8)" 지옥의 불은 연타불, 가스불 정도가 아닙니다. 유황불입니다. 유황불을 가장 强烈한 불입니다. 그런데 이 지옥의 불은 절대로 꺼지지 않는 불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3:1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옥의 불은 꺼지지 않으면서도 사람을 태우는데 구더기 한 마리도 죽지 않습니다.(막9:48~49).

 ② 비교의 고통

 음부의 고통 중에 있던 이 부자는 고통 중에 눈을 들어 아브라함이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았습니다(23절). 이것을 보면 지옥에서 천국이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지옥에 떨어진 이 부자의 눈에 아브라함이 보이고 그의 품에서 위로를 받고 있는 나사로가 보였습니다. 차라리 안 보이면 좋겠는데 아브람함의 품에 안겨 위로를 받고 있는 나사로가 보였습니다. 지금 이 부자는 지옥에서 가장 정신적으로 견디기 힘든 비교의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단절된 곳.

 지옥의 불꽃 가운데서 목마름의 고통을 당하고 있던 이 부자가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해 달라고 懇請을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부자의 이런 간청을 거절하셨습니다(25절). 지옥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단절된 곳입니다.

 

 셋째로, 서로 往來 할 수 없는 곳.

 천국과 지옥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있어 서로 왕래할 수 없습니다(26절). 그러니까 한번 들어가면 다시 나올 수 없는 곳이 바로 지옥이라는 것입니다.

 

 □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들으라.

 

 주님은 나사로를 저 세상에 보내어 달라는 이 부자의 간청을 거절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 거절의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29절)" 모세와 선지자는 바로 구약성경을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구약 성경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메시야가 오실 것입니다. 그 메시야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대의 모세와 선지자는 이미 2천 년 전에 이 땅에 오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를 전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이 바로 모세와 그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여러분을 통해 여러분이 가족을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방법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 천국과 지옥을 증언하므로 그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천국과 지옥의 사실을 믿는 여러분으로 인하여 그들이 복음을 듣기를 원하시고 그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