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 10:11~16, 26~27>
□ 신앙은 관계이다
신앙은 관계입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은 관계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시작되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부모와 자녀의 관계로만이 아니라 여러 관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요15장에서는 주님과 나와의 관계를 친구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요15:15). 성경은 또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사54:6). 그러면 왜 성경은 주님과 주님을 믿는 우리와의 관계를 이렇게 여러가지 관계로 성명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신앙은 관계이고 신앙생활은 관계를 누리는 것이고 관계를 누리는 것은 실제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신랑과 신부의 관계는 실제입니다. 얼굴도 모르고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을 자신의 부모라고 말하고 자신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일주일에 한 두 번 정도 만나는 사람을 자신의 남편, 자신의 아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얼마나 실제입니까? 친구와의 관계 얼마나 실제입니까? 그런데 어떤 분은 주님과 실제적인 관계를 누리며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주님과 실제적인 관계를 누리며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교회를 오래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실제적인 관계를 누리지 못한채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 나는 선한 목자라
본문을 보면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목자와 양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11,14절).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두 번이나 "나는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이 선한 목자이십니까?
첫째로,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11절)"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립니다. 그러면 왜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렸습니까? 그것은 그 양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롬5:8).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을 당신의 양으로 삼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진정한 사랑은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한 목자이신 주님은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구원한 양들을 지키고 돌보는 일에도 자신의 목숨을 거십니다.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구원한 양인데 그 양을 이리와 늑대가 와서 물어가도록 그냥 놔 두시겠습니까? 목숨 걸고 자신의 우리 안에 있는 양떼를 지키고 돌보십니다. 그런데 삯군 목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삯군 목자들을 이리가 나타나면 양을 버리고 도망을 갑니다. 끝까지 양을 돌보지 않습니다(12~13절). 그러나 우리 주님은 목숨을 버리고 구원한 자신의 양들을 끝까지 지키고 돌보십니다.
둘째로, 양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14~15절)"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27절)"
누가 선한 목자입니까? 자신의 양을 아는 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안다'는 말은 보고 지식적으로 안다는 말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14~15절을 보면 안다는 것과 목숨을 버린다는 말이 함께 나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목숨을 버리고 그 목숨을 걸고 사랑하기 때문에 양을 아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한 목자되신 주님이 양인 우리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고 계실까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이 서로 알고 계시는 정도로 우리를 알고 계십니다(15절). 선한 목자이신 주님은 우리의 이름을 아십니다(3절). 나의 약함을 아십니다. 나의 성품과 氣質까지 아십니다. 오늘 나의 필요가 무엇인지 내가 왜 그렇게 쉽게 넘어지고 좌절하고 절망하는지 주님은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5분 후를 알지 못하지만 주님은 아십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내 자신이 나를 아는 것보다 나를 더 잘 아십니다.
그런데 주님을 나를 아시는 것으로 끝나지 않으시고 각각 불러내어 인도하십니다(3절).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었다는 말은 목자와 양의 관계가 개별적이며 인격적인 관계인 것을 말해 줍니다.
□ 양은 어떤 존재인가?
첫째로, 양은 愚鈍하다.
양은 미련한 짐승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우리를 찾지 못합니다. 한 번 길을 잃으면 절대로 자기의 우리를 찾아오지 못합니다. 하나님께 犯罪하므로 에덴 동산에서 추방당한 인간들은 자기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양이 우리였던 에덴동산으로 다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선한 목자이신 주님을 통해서만 양의 우리인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길이요 眞理요 생명이신 주님을 믿음으로 천국인 에덴동산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둘째로, 스스로 먹이를 구하지 못합니다.
양은 스스로 먹이를 찾지 못합니다. 목자가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지 않으면 굶어 죽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매일 같이 만나를 내려 먹여주셨습니다. 고기가 먹고 싶다 할 때에는 동푸으로 메추라기를 보내 주셨습니다. 목마를 때에는 반석에서 생수를 내어 마시게 하셨습니다.
셋째로, 軟弱하다.
다른 동물이나 짐승들은 방어나 공격을 할 수 있는 공격용 무기가 있습니다. 날카로운 이빨, 뿔, 발톱 등으로 방어도 하고 공격도 합니다. 또 힘이 없는 동물들은 나름대로 보호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양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공격용 무기도 방어용 무기도 보호색도 없습니다. 오히려 눈에 잘 띄는 하얀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양은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지 못합니다. 이리와 늑대가 나타나면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잡혀 죽고 마는 것이 바로 양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양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절대적으로 목자가 필요합니다. 양은 목자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목자와 양이 관계를 가지고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선한 목자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양입니다. 양은 목자 없이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선한 목자되신 주님이 당신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선한 목자되신 주님께서 폭풍 가운데에서도 지켜 주실 것입니다. 선한 목자되신 주님이 당신의 인생을 푸른 초장으로 잔잔한 시냇가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주님으 양인 우리들은 목자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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