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

마음이 상한 자 앞에서 노래하지 말라!<2011.10.2 / 제23권 40호>

꿈 꾸는 소년 2011. 10. 7. 17:30

☞ <잠 25:20 ~ 22> 마음이 상한 자에게 노래하는 것은 추운 날에 옷을 벗음 같고 소다 위에 식초를 부음 같으니라 21.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하라 22.그리 하는 것은 핀 숯을 그의 머리에 놓은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 네게 갚아주리라.

 

 □ 마음이 상한 자

 

  우리들 주변엔 마음이 상한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본문에도 마음이 상한 자가 나옵니다. "마음이 상한 자에게 노래하는 것은 추운 날에 옷을 벗음 같고 소다 위에 식초를 부음 같으니라(20절)" 여기 마음이 상한 자는 마음에 苦通이나 슬픔이 있는 자를 말합니다. 원어적 의미로는 마음이 무거운 자를 말합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마음이 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無心코 내뱉는 남편의 말 한다마디에 마음이 상할 때가 있고, 형편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부모 때문에 마음이 상하고 때로는 자식들 때문에 마음이 상하여 눈물을 흘릴 때도 있습니다. 사랑했던 사람과의 헤어짐으로 마음이 상할 때가 있고 때로는 직장생활, 알바를 하면서 무시당함에 마음이 상할 때가 있습니다. 甚至於는 신앙생활 하면서도 마음이 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때로는 자신의 뜻과 마음의 뜻이 맞지 않아 마음이 상할 때도 있습니다. 과거 출애굽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빠른 지름길을 놔두고 먼 광야의 길로 자신들을 인도하실 때 마음이 상하였습니다(민21:4). 또 내 자신의 넘어짐과 약함 때문에 마음이 상할 때가 있습니다. 다윗이 블레셋으로 들어갔다가 자신의 신분이 들통이 나 죽게 된 상황이 되었을 때 미친 사람 흉내를 내어 간신히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자신의 연약한 모습 때문에 마음이 상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시34:18). 사람들은 마음이 상한 자를 멀리 하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십니다. 아니 외면하지 않고 가까이 하실 뿐만 아니라 마음이 상한 자를 치유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오실 메시야를 예언하면서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사61:1)"라고 했습니다. 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까?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기 위해서 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상했을 때 포장마차로 달려가지 마십시오. 마음이 상했을 때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위로 받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달려 나오십시오. 하나님의 임재 속에 거할 때 그 주님이 당신의 상한 마음을 治癒하십니다.

 

 □ 마음이 상한 자 앞에서 노래하지 말라

 

  "마음이 상한 자에게 노래하는 것은 추운 날 옷을 벗음 같고 소다 위에 식초를 부음 같으니라(20절)" 마음이 상한 자 앞에서 노래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 할까요? 마음이 상한 자를 위로하는 척 하면서 마음에 더 큰 아픔과 상처를 가져다 주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욥의 친구들이 그러했습니다. 욥의 세 친구는 욥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욥을 위로해 주기 위해 욥을 찾아 왔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느냐"며 네가 지은 죄 때문에 그 값을 치루는 것이라며 욥의 마음에 더 큰 아픔과 상처를 남겼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을 위로하기는 커녕 도리어 욥의 마음을 상하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마음이 상한 자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知慧롭지 못하면 도리어 위로의 말과 행동이 더 큰 아픔과 상처를 가져다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아침마다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困苦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사50:4)"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잠언 기자도 "경우에 合當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잠25:11)"고 했습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해야 합니다.

 

 □ 왜 마음이 상한 자 앞에서 노래하면 안되는가?

 

 첫째로, 추운 날에 옷을 벗김과 같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거나 시험에 떨어지거나 직장에서 쫓겨나 마음이 상하여 있는 자 앞에서 노래한다는 것은 추운 날에 옷을 벗기는 걱과 같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참 바람을 맞고 추위에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옷을 더 입혀주지는 못할망정 그가 입고 있는 옷을 벗긴다면 그보다 더 잔인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둘째로, 소다 위에 식초를 부음과 같기 때문이다.

 소다는 질산칼륨이나 천연탄산 소다를 말합니다. 이런 소다 위에 식초를 부으면 알카리인 소다와 산성인 초가 작용하여 거품이 일어납니다. 즉각 부글부글 거리며 끊어오르며 발효가 되기 시작합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이 상한 자 앞에서 노래하면 더 큰 마음의 아픔과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상황이 더 악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이 상한 자 앞에서 노래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 원수를 사랑하라!

 

 원수는 크게 두 종류의 원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영적인 원수가 있고 사람의 원수가 있습니다. 영적인 원수는 끊임없이 우리를 공격하고 讒訴하고 넘어뜨리려는 사단 마귀를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말하는 원수는 영적인 원수가 아니라 바로 사람의 원수를 말합니다.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막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21절)" 나의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고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미워하지 않고 보복하지 않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원수의 필요를 채워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원수를 악으로 갚지 말고 그가 어려울 때에 그를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나의 원수에게 선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A.W. 헌터는 원수를 대하는 방법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을 악으로 갚는 것은 사단의 방법이다. 선을 선으로 갚는 것은 사람의 방법이다. 그러나 악을 선으로 갚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다." 하나님의 방법은 악을 선으로 갚는 것입니다. 

 

 □ 왜 원수를 사랑해야 하는가?

 

 첫째로, 핀 숯을 머리 위에 놓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22절a). 

 그러면 여기에서 '숯불을 머리에 놓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가 원수에 대하여 필요를 채워주고 선을 행하면 원수가 자신의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어 회개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유일한 복수의 악을 선으로 갚는 것입니다.

 

 둘째로, 여호와께서 갚아 주시기 때문입니다(22절b).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우리의 원수를 사랑하며 악을 선으로 갚을 때 하나님께서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갚아 주신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원수를 사랑하며 악을 선으로 갚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상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계속적으로 선을 행하여도 뉘우치지 않고 도리어 대적하는 원수를 하나님이 대신 갚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원수를 미워하고 보복하고 저주하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원수에 대하여 방관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적극적으로 나의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원수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갚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나의 인생에는 복으로 원수에게는 심판으로 갚아 주십니다. 그러므로 원수를 친히 갚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