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렘 1:4~7>
□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니라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습니다(4절). 그러면 하나님 말씀이 임한 에레미야는 누구입니까? 1절을 보면 예레미야는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그냥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이라고 소개하지 않고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 중 힐기야의 아들"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실패한 제사장의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아나돗은 솔로몬 왕 때 아비아달 제사장이 流配된 곳입니다. 아도니아가 솔로몬에게 反逆을 하였는데 그때 아비아달이라는 제사장이 그 반역에 참여하였다가 제사장직을 박탈당하고 자기의 고향으로 추방을 당하였는데 그곳이 바로 아나돗입니다. 그러므로 아나돗의 제사장들이라는 말은 솔로몬에게 반역을 행하다 고향으로 추방당한 아비아달의 후손들을 말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예레미야가 가문은 沒落한 제사장의 가문일 뿐만 아니라 실패한 제사장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몰락하고 실패한 제사장의 아들 중에 한 사람인 예레미야에게 말씀으로 임하셨습니다. 아무튼 하나님의 말씀이 임함으로 예레미야는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함으로 선지자로서 새로운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보거나 인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임함으로 자신의 召命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임함으로 悔改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인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오늘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왜 오늘 사람들이 방황하고 어려운 일을 만나면 먼저 自殺부터 생각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하고 默想하는 사람들 중에 자살하는 사람을 보았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살을 예방하는 가장 좋은 길은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 내 인생의 眞正한 主人은 하나님
"내가 너를 母胎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性別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先지者로 세웠노라 하시기로(5절)"
① 내가 너를 알았다.
모태에서 짓기 전에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알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알았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야다'입니다. 히브리어 '야다'는 사랑의 관계속에 서로 하나되었을 때 속속들이 알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예레미야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그를 사랑하셨고 그 사랑의 관계 속에서 그를 알고 계셨다는 말입니다.
② 내가 너를 성별하였다.
여기서 성별하였다는 말은 원어로 "따로 분리해 내가"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사장이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따로 분리해 내듯이 예레미야를 특별한 목적을 위해 구별하여 내셨다는 것입니다.
③ 너를 선지자로 세웠다.
그러면 그 특별한 목적이 무엇입니까? 바로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우연히 어느 날 이 세상에 태어난 존재가 아닙니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의 말처럼 우리는 세상에 던져진 존재가 아닙니다.예레미야처럼 하나님이 모태에서 짓기 전에 아셨고 성별하였고 하나님이 세우셨다면 내 인새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내 인생을 지으시고 내 인생을 디자인하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자기의 주인이라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자기 마음대로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고 자기 생각에 옳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신이 자기의 주인이라 생각하기에 자신의 목숨마저도 스스로 끊는 것입니다. 왜 자살이 하나님 앞에서 큰 죄인지 아십니까? 내 생명이 주인이신 하나님을 拒逆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 사람들이 흔들리고 방황하고 쉽게 자살을 선택합니까? 내 자신이 누군이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얼마나 尊貴한 자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라고 생각하지 때문입니다. 왜 내가 살아야 하는지 삶의 이유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 내가 슬프도소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예레미야는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6절)" 왜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슬퍼하였을까요? 첫째는, 어린 나이 때문입니다. 말을 잘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안돗 출신의 제사장의 後裔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가장 슬퍼했던 이유는 바로 자신이 아나돗 출신의 사람이기 대문입니다. 아나돗의 거하는 제사장의 후예들은 언제나 반역한 제사장이 후예, 실패한 제사장의 후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나돗의 제사장들은 예루살렘에 거하는 다른 제사장들에 비해 언제나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영향력을 행사하였던 사독 가문의 제사장의 후예들과 자신들을 비교해 보면 자신들은 비주류에 속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언제나 다른 제사장들의 후예와 비교하면 왕따를 당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예레미야에게도 일종의 열등감이 있었습니다. 모세에게도 기드온도 劣等感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에게도 열등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레이먀의 인생을 보면 그 열등감을 이겨내었습니다. 아니 성경을 보면 모세와 기드온도 고통의 분깃을 안고 태어났던 야베스도, 기생의 아들로 태어났던 입다도 열등감을 이겨내고 당당하게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시는 사명이 무엇인지를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내가 구구인지를 분명히 알면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면 열등감에 매이지 않습니다.
□ 너는 가서 말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하지니라(7절)" 우리 모두는 예레미야처럼 이 시대에 부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세상으로 가야 합니다. 내 인생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이 가라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가서 부르심의 소명을 堪當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가서 왕 같은 제사자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요령을 피우고 눈치를 보며 얄팍하게 인생을 살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감당한다는 생각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힘들고 어려워도 때로는 逼迫이 있어도 묵묵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通路로 쓰임 받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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