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3 : 1 ~ 3>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늘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2.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셀라) 3. 여호와는 주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 심히 많은 對敵
시편 3편은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하여 예루살렘을 도망쳐 나올 때 지은 시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가장 먼저 자신이 대적이 많다는 것을 하나님께 아뢰고 있습니다. "여호와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1절)"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2절a)" 1절과 2절에 보면 "많은"이라는 말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 이것을 보면 다윗은 자신의 대적이 이렇게 많은 것에 대하여 지금 놀라워하고 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도 대적이 있습니다. 벧전 5:8을 보면 마귀가 우리의 대적입니다. "우리의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기 때문에 謹愼하고 깨어 있으라"고 말씀 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에 눈이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마귀가 부리는 귀신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아니 사단의 종이 되어 우리를 대적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지금 다윗에게 있어서 대적이 누구입니까? 자기 아들입니다. 자기가 믿고 信賴했던 자기 부하들입니다. 자기 백성들이 대적이 된 것입니다. 그렇듯이 오늘 내 가족 중에 누군가, 오늘 내 주변에 있는 어떤 사람이 어느 날 나의 대적이 되어 나를 공격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하여 일을 행하시듯 마귀도 사람을 통하여 자신의 뜻을 貫徹시킵니다. 그러므로 어느 날 내 주변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나의 대적이 되어 나를 공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래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사단아 네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 대적의 嘲弄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2절)" 대적들은 지금 다윗의 삶 가운데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며 조롱하였습니다.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역 앞에서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맨발로 쫓겨 갈 때 대적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다윗의 시대는 끝났다. 하니님이 다윗을 버렸다.다윗은 하나님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더 이상 다윗은 왕이 아니다" "생각해 보라. 하나님이 그를 버리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라면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이 그를 버렸기에 시므이까지도 돌을 던지며 다윗을 조롱하지 않는가"라며 조롱하였습니다. 대적들로부터 이런 조롱을 받았을 때 다윗의 心情이 어떠했겠습니까? 경험해보신분은 아시겠지만 경제적인 어려움, 疾病의 苦痛 다 勘當할 수 있지만 제일 견디기 힘든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제일 고통스럽고 괴로운 것이 바로 하나님께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것, 하나님께로 버림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말을 들으면 고개를 떨 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상처를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 '그러나'의 하나님을 宣布하라
그러나 다윗은 대적의 조롱소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사단의 음성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의 하나님을 선포했습니다. "여호와여 주는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3절)" 우리 말 성경에는 '그러나'라는 접속사는 없지만 원어 히브리어 성경이나 영어성경을 보면 "But"이라는 접속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아무리 많은 대적들이 자기를 치려하고 '하나님이 너를 버리셨다 구원받지 못한다 말할지라도 그러나 "하나님은 나의 방패시오 나의 영광이시오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이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은 '그러나'의 하나님이셨습니다. 대적들이 아무리 나를 조롱하고 죽이려 한다 할지라도 그러나 나의 하나님은 '나의 방패시오 나의 영광이시오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라는 것입니다. 사단의 세계에는 '다시'가 없습니다. 우리가 넘어지고 실패하면 사단은 다가와 속삭입니다. '너는 이제 끝났어" '너는 다시 일어설 수 없어'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지 않아' 사단의 세계에는 다시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세계에는 언제나 다시가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으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의 하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다시 시작해 보라'는 말입니다. 아무리 넘어지고 또 넘어졌어도 아무리 실패하고 또 실해했어도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은 '다시 시작해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고 용서하는 일에 실패하고 또 실패해도 '우리 다시 시작해 보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마귀의 세계에는 그러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계에는 그러나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대적자들이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비난하고 조롱할 때 '그러나'의 하나님을 외쳤던 것입니다.
□ 주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
다윗은 대적자들의 조롱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이십니다'라고 외쳤습니다. 자기를 榮華롭게 하시는 분이심을 告白하였습니다. 더나아가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임을 선포했습니다. 지금 자신은 지은 죄로 인하여 징계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책감 때문에라도 다윗은 고개를 들수 없는 상황 가운데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고백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주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하나님은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라고 외칩니다. 다윗은 자신이 비록 하나님의 징계 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머리를 들게 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젠가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왕권을 되찾게 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이 믿음이 있었기에 그는 고개를 떨구지 않았습니다. 사유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믿는 이 믿음이 있었기에 징계 가운데 있으면서도 죄책감 때문에 고개를 숙이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고개를 떨구며 살아갈지라도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고개를 떨구며 고개숙인 자들로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가 사단의 음성을 듣고 고개를 떨구며 살아갑니까? 왜 사업이 실패하고, 결혼 생활에 실패하고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고개를 떨구며 살아가십니까?
왜 하나님의 사람이 정년퇴직과 동시에 고개숙인 사람으로 살아갑니까? 왜 하나님의 사람이 상실감, 배신감, 아니 죄책감 때문에 고개를 떨구며 살아갑니까?
우리 중에 어떤 부모도 내 자녀가 고개를 떨구며 고개 숙인 사람으로 살기를 원치 않듯이 하늘의 하나님 아버지 역시 당신의 자녀인 저와 여러분이 고개를 떨구며 고개숙인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거닐지라도 고개를 떨구지 마십시오. 비록 내가 하나님의 징계 가운데 있을지라도 思惟하심의 은총을 믿고 고개를 떨구지 마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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