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딤후 1:6 그러므로 내가 나의 按手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恩賜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熱情의 사람을 찾으십니다. 거룩한 열정의 불꽃으로 활활 타오르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열정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열정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타오른 거룩한 불꽃이 끝까지 持續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罪性이 있고 사단[사탄 : satan]의 攻擊이 계속되고 있기에 열정이 식어 질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열정은 언제나 식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다시 불길이 타오르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再 點火시켜 주어야 합니다. 누군가 그 거룩한 열정을 다시 회복시켜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디모데에게 있어서 바울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 다시 불일 듯 하게 하라
바울은 본문에서 자신이 이 편지를 쓴 이유를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 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불일 듯 하게 하라"는 말은 한 마디로 "꺼져가는 불꽃을 다시 살려 타오르게 하라"는 말입니다. 이것을 보면 디모데의 열정이 많이 식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니 그의 사역이 많이 萎縮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때 디모데는 바울의 뒤를 이어 에베소 교회의 목회자로 사명을 堪當하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젊은 나이에 그런 重且大한 사명을 맡다보니 다른 사람들의 猜忌와 嫉妬도 있었습니다. 甚至於는 자신의 年少함을 업신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지 小心한 성격의 디모데는 胃臟이 좋지 못하여 消化를 잘 시키지 못하는 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늘 자신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자신의 미래가 두려움으로 다가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사역이 두려움으로 다가오기 시작하였습니다. 두려움이 掩襲해 오기 시작하였습니다. 福音을 위해 한평생을 살았던 사도 바울의 人生의 末路가 저렇게 悲慘하게 끝이 난다면 앞으로 나의 인생도 어떻게 될 것인가? 苦難을 피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목사 按手를 받고 목회를 시작할 때 가졌던 그 거룩한 열정이 점점 식어져가고 있었습니다.
이때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를 써서 "하나님의 恩賜를 다시 불일 듯 하게 하라"고 勸勉합니다. 식어져가고 꺼져가고 있는 디모데의 마음에 거룩한 불꽃이 다시 타오를 수 있도록 영적인 재점화를 試圖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일은 누군가의 삶을 점화하는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훌륭한 멘토(Mentor)입니까? 召命의 불꽃, 기도의 불꽃을 다시 타오르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거룩한 성령의 불꽃으로 다시 타오르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영적 점화자입니다.
□ 하나님의 恩賜
그러면 바울은 디모데의 사역에 있어서 무엇이 다시 불타오르기를 원하였습니까?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입니다. 하나님의 은사란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을 말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장로의 회에서 안수를 받을 때 豫言을 통하여 이 하나님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은 密接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後悔하심이 없느니라(롬11:29)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부르실 때 그 사람만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필요한 은사를 주십니다. 은사를 주시지 않고 부르심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또 본문을 보면 바울은 자신의 은사를 위해 기도하지 않고 예배소교회를 擔任하고 있는 디모데의 은사를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중심적입니다. 구래서 기도할 때에도 자신의 필요만을 구하고 하나님의 은사도 자신에게만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사가 다른 사람에게도 주어지고 나타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沈滯에 빠져있고 意氣銷沈해 있고 두려워 떨고 있는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은사가 다시 타오르기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자신만의 은사를 구하는 자가 되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은사가 나타나기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 어떻게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타오르게 할 수 있는가?
그러면 바울은 어떻게 디모데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타오르게 하고자 했습니까?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과거 장로의 회에서 안수를 받을 때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은사를 생각하게 하므로 은사가 다시 불일 듯 일어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과거에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생각하게 하므로 은사가 다시 불일 듯 일어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과거에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생각하게 함으로' 다시 그 은사를 불타오르게 하고자 했습니다. 우리는 너무 忘却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너무 쉽게 잊어버립니다. 특별히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은사와 은혜와 축복은 너무나 빨리 잊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에 거룩한 열정의 불꽃이 다시 타오르게 하려면 하나님의 은사가 다시 불일 듯 일어나게 하려면 과거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도우심을 기억하며 回想해야 합니다. 과거에 하나님이 내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그 때의 感動을, 그때의 도우심을 생각하면 불꽃이 다시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내 영혼이 침체되면 내 영혼에 거룩한 불꽃이 시그러지면 우리는 과거에 내 인생 가운데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記憶하며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어려울 때, 그래서 새벽마다 눈물로 기도하며 부르짖던 그 때에 하나님이 내게 들려 주셨던 그 음성을 다시 되새겨며 들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좋은 기억들이 많이 있어야 합니다. 인생이 힘들고 어려울 때 내 영혼이 침체되고 열정이 식어졌을 때 그때를 생각만하면 다시 불타오르게 만들어 주는 은혜의 순간들이 많이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녀들에게 좋은 믿음의 기억들을 많이 갖도록 만들어 주어야합니다.
□ 다시
6절 말씀 가운데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단어는 "다시 불일 듯 하게 하기 위하여"라고 할 때 바로 '다시'라는 단어 입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 하나님께서 가장 즐겨 사용하시는 단어 중에 하나가 바로 "다시"라는 단어 입니다. 인생은 결코 한 번의 실패로 끝나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의 인생에 다시가 없다면 성경은 반 이상으로 줄어야 합니다. 반은 커녕 몇 페이지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모세의 일생에 '다시'가 없었다면 모세는 될 수 없었습니다. 다윗의 인생에도 베드로의 인생에도 다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넘어지고 실패해도 "우리 다시 시작해 보자"라고 말씀하십니다.우리의 영혼이 침체 가운데 빠지고 위축될 때에도 "다시 일어나 걸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삶에 다시를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마귀에게는 "다시"가 없습니다. 마귀는 언제나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말하고 언제나 "끝장이다"라고 말합니다. 저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다시입니다. 아무리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실패했어도 "다시 시작해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차가워졌어도 다시 불타오르게 하라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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