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후 12:7~9>
하나님의 사람 바울에게도 육체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육체의 가시가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람에게도 육체의 가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그 榮光을 위해 사는 하나님이 사람에게도 육체의 가시가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오직 복음을 위해 살고자 했던 사람에게도 육체의 가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니 신비한 영적 세계를 경험한 사람에게 육체이 가시가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無關하게 하나님께 이끌려 셋째 하늘에 들어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천국의 영광을 경험하였던 사람에게도 육체의 가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에게도 가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에게도 가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신비스러운 영적세계를 경험한 사람에게도 고난의 가시가 주어질 수 있습니다. 꼭 죄를 지어서만이 아닙니다. 기도가 부족하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람에게도 뽀족한 나무 막대기가 몸을 찌르는 것과 같은 고통과 아픔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왜 육체의 가시가 주어졌는가?
너무 自慢하지 않게 하시려고 육체의 가시를 주셨습니다(7절). 자만이란 스스로 높아지는 것을 말합니다. 스스로 높아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다른 말로 하면 驕慢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육체의 가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만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完璧하게 갖춘 사람입니다. 정말 바울은 학문적으로 보거나 가문으로 보나 도덕과 倫理的으로 보나 靈的인 體驗으로 보나 영적인 恩賜로 보나 驕慢해 질 수 있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교만에 빠지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바울이 스스로 교만하여질까봐 육체의 가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謙遜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많은 것을 체험하고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할지라도 교만하여 버림을 받는다면 그 지식과 체험과 은사가 무슨 所用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바울에게서와 같이 우리의 인생의 가시를 주실 때가 있습니다. 왜 우리의 인생에 가시를 주십니까? 자만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주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임을 날마다 고백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교만하여 버림받는 것보다 육체의 가시로 인하여 주님만을 지하며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우리의 삶에 육체의 가시를 주십니다.
□ 바울의 기도
바울은 자신의 인생 가운데 육체의 가시가 주어졌을 때 어떻게 하였습니까? 기도하였습니다. 바울을 육체의 가시로 인해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울 대 그 육체의 가시가 떠나기 위하여 세 번이나 주께 간구하였습니다(8절). 세 번 간구했다는 말은 그만큼 간절히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이 육체의 가시를 떠나기 위해 주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바울처럼 육체의 가시를 만나면 주께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고난이 가시가 주어졌든지 가장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면 깨달음이 옵니다. 이 가시가 나의 잘못으로 인함인지, 게으르고 악함 때문이지, 廳지기로서 건강과 시간과 물질을 바르게 관리하지 못함인지 하나님의 섭리 속에 주어지는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체의 가시가 무엇이든지 먼저 그 육체의 가시를 인하여 주께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 내 恩惠가 네게 足하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는 바울의 간절한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내 은혜가 네게 조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9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비록 네가 너의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주지 않을 지라도 그동안 너에게 베풀어준 그 은혜에 만족하라는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은 亨通만을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저주로 생각했던 가시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한 해을 돌이켜 생각해 볼 때 가정적으로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일들도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자녀 때문에 가슴을 졸이고 남모르게 눈물을 흘려야 했던 순간도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때로는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은 없고 일은 더욱 꼬이기만 하고 힘들고 어려운 삶이 계속될 때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평했던 순간도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처럼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기도했건만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주지 않으실 때 하나님에 대한 거절감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내가 너에게 베풀어준 은혜와 사랑을 생각해 보라! 내가 너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하여 주지 않았느냐? 내가 너에게 나의 생명을 주었고 내가 너를 나의 자녀로 삼고 여기까지 인도해 주지 않았느냐? 불평과 원망만 하지 말고 내가 너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베풀어준 나의 사랑을 나의 矜恤을 나의 은혜를 생각해 보라...
□ 기도의 거절과 바울의 반응
하나님은 없애달라는 가시는 없애 주지 않으시고 대신 그 가시의 의미를 설명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사실 기도의 거절입니다. 하나님은 육체의 가시를 거절해 달라는 바울의 간절한 기도를 거절하셨습니다. 지금 내가 베풀어준 그 은혜면 족한데 뭘 또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기도를 다 들으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기도를 다 응답해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때로는 우리의 기도를 거절하시기도 하십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거절도 하나님 편에서는 응답인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은 자신의 간절한 기도가 거절 당했을 때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바울은 도리어 기뻐했습니다(9절b). 자신의 기도가 거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낙망하지 않았습니다.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불평하지도 않았습니다. 기도를 쉬를 죄도 범하지도 않았습니다. 도리어 크게 기뻐했습니다. 가시가 물러간 것도 아니고 자신의 처지와 환경이 바뀐 것도 아닌데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가시의 의미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가시를 주신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자만하지 않게 하려고 육체의 가시를 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의 능력이 약한데서 穩全해 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내가 약할 때 온전하신 하나님이 능력이 보자기처럼 내 인생을 덮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기 시작했습니다.
분명히 가시는 아픔이고 고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그 약함을 인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삶 가운데 머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당신의 가시 앞에서 당신의 인생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더이상 당신의 가시 앞에서 눈물을 흐리지 마십시오. 당신의 가시는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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