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후 12:1~6>
□ 不得不 자랑하노니
사도 바울은 놀라운 영적 세계를 경험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자신의 영적 세계의 神秘한 체험을 말하면서도 無益하나마 부득불 자랑한다고 말합니다.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幻想과 啓示를 말하리라(1절)" 바울은 평소 자기 자신을 자랑하는 것에 대하여 무익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자기 자신을 자랑하는 것에 대하여 어리석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고후11:1). 그런데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써 보내면서 어쩔수 없이 자신이 경험한 영적 세계의 경험을 자랑한다고 말합니다. 왜 바울은 이렇게 부득불 신비한 영적 세계의 경험을 자랑하였을까요? 그것은 거짓 사도들로부터 교회를 지키고 자신의 사도성을 辯護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시 교린도교회에는 거짓교사들이 있어서 자신들의 신비한 체험과 외적 조건들을 내세우며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하며 대항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거짓 계시나 환상을 誇張해서 자랑하기까지 하며 바울의 가르침을 부정하게 만들고 바울의 사도성을 의심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14년 자신이 체험한 영적 세계의 경험을 어쩔 수 없이 言及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신비한 영적 셰계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不可避하게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득불 자랑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 주의 幻想과 啓示
그러면 사도 바울이 경험한 신비한 영적 체험은 어떤 것입니까?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합니다. 주의 환상과 계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환상과 계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바울로 하여금 보게 한 환상과 계시를 말합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이 경험한 주의 환상과 계시는 무엇입니까? "십 사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자라(2절)" 사도 바울이 경험한 주의 환상과 계시는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늘의 개념을 세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첫째 하늘은 그냥 새들이 날아다니는 우리의 눈에 보이는 하늘입니다. 둘째 하늘은 별들이 거하는 하늘입니다. 곧 우주공간을 말합니다. 셋째 하늘은 하나님과 천사들이 거하는 곳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늘을 나누지 않아도 바울은 4절에서 이 셋째 하늘을 "樂園"으로 描寫하고 있습니다. "그가 낙원이르로 이끌려가서(4절a)" 그러니까 바울이 말하는 삼층천은 바로 낙원을 말합니다.
□ 바울의 삼층천 체험의 특징
1. 신비한 체험
바울은 자신이 체험한 삼층천의 체험을 말하면서 자신이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모른다는 말을 2절과 3절에 걸쳐 두 번이나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습니다(4절).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근거로 바울의 체험에 대하여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바울의 이런 표현이 도리어 바울의 체험이 진실된 체험인 것을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국과 지옥은 모든 인간의 언어와 상상력으로는 到底히 설명이 불가능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세계는 이 땅의 세계와는 너무나 다른 곳이기 때문에 이 땅이 언어와 論理를 가지고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삼층천의 체험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신비한 체험이었습니다.
2. 3인칭 주어 사용
바울은 자신이 친히 경험한 영적 체험이지만 나 바울이라고 말하지 않고 3인칭 주어를 사용하여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왜 바울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이 영적 체험을 제3자가 경험하고 체험한 것처럼 말하였을까요?
첫번째 이유는 그 체험이 자신에 대한 자랑이 되지 않도록 하기 우해서입니다. 바울은 이런 놀라운 신비스러운 체험을 이야기함으로자기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14년 전에 이 놀라운 체험을 하였지만 침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14년의 침묵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을까요? 그런데 바울은 그 놀아눈 신비스러운 체험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14년 동안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신비한 체험이 자기 誇示를 위한 자랑으로 비추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신비한 체험과 자신 사이에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주관적 체험을 객관화 시키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우리의 主觀的 體驗을 客觀化 시키려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경험한 것만을 고집하고 다른 사람이 경험한 것을 認定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3. 不可抗力的 체험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2절)" "낙원에 이끌려 가서(4절)" 사도 바울은14년 전에 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의 힘에 이끌려 셋째 하늘에 들어간 경험을 하였습니다. 불가항력적으로 이루어졌다는 말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런 신비적인 체험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攝理 속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불가항력적인 방법에 의해 이런 체험이 이루어진다면 그 사실을 우리는 謙虛히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가끔 인위적으로 이런 체험을 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변에 보면 入神을 하여 천국을 경험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입신을 강조하고 가르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 정말 천국은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경험한 이 삼층천 곧 낙원의 경험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정말 천국은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바울이 복음과 하나님의 교회와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기 위해 부득불 자신의 삼층천의 체험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런 내용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천국이 실재로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자신의 체험이 사실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2번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6절에서느 "내가 참 말을 함이라(6절)" 자신의 삼층천이 체험이 꾸며낸 말이 아니라 사실에 기초한 참 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표현을 못해서 그렇지 천국은 정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이 신비한 체험은 천국이 너무나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정말 천국은 있습니다. 성경 곳곳에 내세에 우리가 들어가게 될 천국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지 나사로가 죽었을 때 천사들이 그 영혼을 받들어 아브라함의 품으로 인도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한편 강도에게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천국은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소망으로 오늘의 고난과 아픔을 이겨내고 주님이 내 영혼을 부르시는 그 날 가장 밝고 환한 모습으로 주님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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