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

너는 내 것이라<2012.11.11/ 제24권 46호>

꿈 꾸는 소년 2012. 11. 25. 04:55

☞ <이사야 43:1> - 구원의 약속 -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 너는 내 것이라

 

 하나님께서 야곱과 이스라엘을 향하여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것이라(1절)"는 말은 소유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어둠에서 빛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신 다음 "하나님의 것"으로 소유권 등기를 마치셨음을 말합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오늘 신부된 이 땅의 교회를 향하여 '너는 내꺼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이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롬8:15을 보면 우리는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훌륭하고 능력이 많은 아버지여도 그 아버지가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면 그 분의 인격과 능력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전능하신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지금도 능력으로 세계를 붙들고 계시는 분이 바로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 하나님이 먼저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것이라!" 이 보다 더 강력한 사랑의 표현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너는 내 것이라"라는 含蓄된 말로 당신의 사랑을 우리 가운데 표현하십니다. 진정한 가치는 누구의 소유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아무리 하찮은 것도 누구의 것이 되는냐에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똑같은 옷과 신발과 모자라 할지라도 누구의 것이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은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입니까? 天地 萬物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너는 내것이라"고 말씀하셨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은 이 세상의 누구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尊貴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소유된 우리는 이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도, 무엇과도 바꿀 수도 없을 만큼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 소유인가? 존재인가?

 

 그런데 오늘 자신의 존재가치를 알고 사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보다는 소유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신의 존재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하기보다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했는가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합니다. 독일의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라는 책에서 "오늘 인류의 불행과 고통은 지나치게 소유에 목적을 두는 데에서 비롯되었다"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소유에 목적을 두고 인생을 살면 언제나 불안하고, 긴장되고, 갈등하고, 대립하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을 얼마나 소유해야만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소유에 목적을 두고 사는 사람은 마음에 평안이 없고 기쁨이 없습니다. 소유는 끝이 없습니다. 만족이 없습니다. 소유에 목표를 두는 사람은 끝없이 더 가지려고만 하고, 더 올라가려고만 합니다. 올라간 다음에도 만족이 없습니다. 소유에 목적을 두고 사는 사람들은 부모와 형제를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부모에게 불효하고 형제간에도 우애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존재에 삶의 이유와 목적을 두는 사람은 부모님이 나를 이 세상에서 태어나게 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가진 것이 없이 가난하게 살아도 형제간에 우애하고 살아갑니다. 물론 소유가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소유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도 소유를 필요 없는 것으로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나의 위치와 영적인 존재를 무시하고 소유를 우선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선순위에 있어 존재가 먼저이고, 소유가 나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소유보다는 존재에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소유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깨닫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삶이 여유가 있고, 가난한 중에도 베풀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자신의 존재 가치를 깨달을 때 조급하게 쫓기는 인생을 살지 않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 야곱과 이스라엘

 

 그러면 하나님은 누구에게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내 것이라(1절)" 여기 야곱과 이스라엘은 구약 시대에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말합니다. 하지만 본문의 야곱과 이스라엘은 바로 예수를 믿음으로 새 언약의 백성인 저와 여러분들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하나님은 새 언약의 백성인 저와 여러분을 향하여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거룩한 교회의 공동체에 속한 저와 여러분을 향하여 "너는 내꺼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굳이 야곱이라는 이름과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함께 부르며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실까요? 야곱이라는 이름과 이스라엘이라는 이름 속에 不可抗力的인 하나님의 은혜,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포기할 수 없는 당신의 거룩한 열정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형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고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야곱이라는 이름의 뜻은 '발뒤꿈치는 잡은 자', 다른 말로 하면 '간사한 자'입니다. 야곱은 자신의 이름처럼 형과 아버지를 속여 장자의 명분을 얻었습니다. 삼촌의 집에서 피난살이 할 때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삼촌을 속여 부자가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야곱은 자신의 출세와 성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얍복강 나루터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다 자신의 허벅지 관절이 무너져 내릴 때 마침내 하나님을 붙들고 "당신이 나를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야곱의 이름을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이스라로 바꿔 주셨습니다. 야곱이 변하여 이스라엘이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저와 여러분을 향한 포기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열심과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마침내 야곱과 같은 우리를 변화시켜 이스라엘이 되게 한 것입니다. 불가항력적인 그 하나님의 은혜가 마침내 우리로 하여금 주 없이 살 수 없는 인생으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 언제 이 말씀을 하셨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은 언제 "너는 내 것이라"는 이 말씀을 하셨습니까? 바벨론의 침략으로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지고, 성전이 불에 타고, 똑똑하고 유능한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 땅에 포로로 끌려가 말할 수 없는 모욕과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포로생활을 시작할 때입니다. 혼란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를 때입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 바벨론이라는 땅에서 蔑視와 賤待를 받으며 노예생활을 해야만 하는가? 과연 우리가 믿은 여호와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신가?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가? 하나님이 우리를 영원히 버리시는 것은 아닌가? 果然( 결과에 있어서도 참으로)우리는 다시 우리의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흔들리고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야곱아, 이스라엘아,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너희들이 나의 징계를 받고 있지만 그래도 "너는 내 것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징계 가운데 있을지라도 신분은 바뀌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포기하지 않았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죽지 말라는 것입니다. 당당하라른 것입니다. 사실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如前히 사랑하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야곱아, 이스라엘아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