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2012.11.18/ 제24권 47호>

꿈 꾸는 소년 2012. 11. 25. 20:18

☞ <이사야 43:1>

 

 □ 하나님의 소유된 根據

 

 소유권을 인정받으려면 확실한 근거가 필요합니다. 소유권을 인정받으려면 그것이 내 것이라는 등기 권리증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情況上, 그것을 내것이라고 우겨도 그 소유권을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왜 "너는 내 것이라"하시는지 그 분명한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니라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리라(1절a)" 왜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당당하게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7절에도 보면 글 내가 지었고 내가 만들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윗 역시 시139:13에서 "주께서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우연히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부모의 불장난으로 어쩌다 보니 이 세상에서 태어난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나를 지으셨고 나를 창조하셨기에 하나님은 오늘도 저와 여러분을 향하여 당당히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나를 救贖하셨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향하여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까? 그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이 나를 구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1절b)" 구속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가알'이라는 단어인데 대가를 지불하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입장에서는 공짜로, 오직 은혜로 이루어지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에는 반드시 대가가 지불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실 때에도 어린양의 피의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바벨론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돌아오게 하실 때에도 애굽과 구스와 스바를 속량물로 주셨습니다(3절).

 우리 역시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贖良 곧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엡1:7). 피는 곧 생명을 말합니다. 주님은 자신의 생명을 주고 저와 여러분을 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오늘 저와 여러분을 향하여 "너는 내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이 나를 지명하여 불러주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1절c)"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라는 말씀은 많은 사람들 가운데 어떤 한 사람을 지명하여 불러낸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하나님의 선택적 사랑을 말합니다. 성경은 브살렐을 지명하여 불러 성막을 짓게 하셨고, 모세를 지명하여 불러내사 애굽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해 내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저와 여러분을 지명하여 부르심으로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벧전2:9).

 하나님은 수없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저와 여러분을 직접 지명하여 부러내어 당신의 소유 삼으셨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더 양심적이고, 다른 사람보다 인격적이고, 다른 사람보다 똑똑하고 유능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창세전에 저와 여러분을 그 기쁘신 뜻 가운데 선택하셨기에, 때가 되매 저와 여러분을 불러내신 것입니다.이렇게 지명하여 불러내어 당신의 소유된 백성으로 삼아 주셨기에, 주임을 오늘도 우리를 향하여 "너는 내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그러면 하나님의 소유된 자가 누리는 축복은 무엇입니까?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1절b)" 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까?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너는 내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5절에도 보면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왜 하나님은 당신의 소유된 자들에게 가장 먼저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것은 너는 이제 나의 소유가 되었으니 내가 너의 인생을 책임져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내 아들의 피의 값을 주고 너를 샀으므로 내가 너를 책임지리라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인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똑똑해도 내 자신을 책임질 수 없습니다. 5분 후를 알지 못하는 내가 내 인생의 미래를 어떻게 책임질 수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마음 하나 다스리지 못하고, 추스르지 못하여 우울증과 恐慌障애을 겪고 잠을 이루지 못할 대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 우리 하나님만이 우리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매일의 삶이 두려움의 연속임을 말해줍니다. 사실 두려움이 없는 날이 거의 없습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질병에 대한 두려움, 노후생활에 대한 두려움, 세균 바리러스에 대한 두려움, 상실에 대한 두려움, 시험에 대한 두려움, 이별에 대한 두려움, 낯선 환경과 사람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등, 이렇게 우리의 삶은 두려움의 연속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정도의 차이가 다를뿐 두려움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 왜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가?

 

 첫째로,두려움은 하나님께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謹愼하는 마음이니(딤후1:7)"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주의 자녀들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평안을 주기 원하십니다. "너희을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災殃이 아니니라(렘29:11a)" 그렇다면 두려움은 누가 가져다주는 것입니까? 두려움이 영이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로, 두려움은 영적 장애물이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을 품은 자는 영적 전쟁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사사기 7장을 보면 300명의 기드온 용사들이 메뚜기 떼와 같이 많고 해변의 모래알같이 많은 미디안 용사들을 물리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기드온의 군대를 선발하십니까? 미디안의 군대와 싸울 사람들은 나오라 하였더니 30,000명이 모였습니다. 그때 기드온이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을 떠나 돌아가라"고 했더니 2만 2천명이 돌아갔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두려워 떠는 자는 영적 전쟁을 치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우리의 믿음을 약화시킵니다. 그래서 영적 전쟁을 치루지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두려움 가운데 있는 자는 평안의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두려움은 우리의 영혼을 無氣力하게 만듭니다. 자신감을 상실하게 만듭니다. 꿈과 비전을 잃게 만듭니다. 신앙의 성장과 성숙을 방해합니다. 어둠의 영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두려움이 우리의 삶에 현실이 되게 합니다. 이렇게 두려움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영적 장애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매일 우리를 향하여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