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20:5>
□ 사람의 嫉妬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의 책입니다.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강렬하게 표현해 주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 단어가 무엇입니까? 바로 질투입니다. 성경을 보면 질투는 타락한 인간의 성품이요 인간의 욕망에서 나오는 심리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타락한 인간들에게는 크고 작음의 차이만 있을 뿐 질투라는 성품이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인류의 최초의 살인 사건도 질투로 인하여 일어났습니다. 왜 가인이 아벨을 쳐 죽여습니까? 바로 질투 때문입니다. 왜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까? 그것 역시 바로 질투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질투는 타락한 성품 중의 하나일 뿐만 아니라 무서운 감정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 질투하시는 하나님
그런데 하나님께서 親히(몸소) "나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5절b)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출34:14) 이 질투라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칸나'입니다. 그러니까 질투하는 하나님은 히브리어로 '엘 칸나'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참 많이 나옵니다. 고유 명사로서 여호와, 엘로힘과 같은 이름도 있지만 여호와 이레, 여호와 라파, 여호와 닛시와 같은 이름도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하나님의 이름 역시 여호와 칸나, 엘 칸나입니다. 그러니까 질투하시는 하나님, 엘 칸나는 고유 명사가 아니면서도 하나님께서 직접 지으셔서 알려주신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질투와 인간의 질투는 사랑의 하나님으로서 사랑의 대상을 향하여 갖는 거룩한 성품 중의 하나인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질투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님은 왜 인간들이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질투하는 이름을 지어 자신을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부르게 하셨을까요?
□ 하나님의 열심
원어적인 의미로 보면 하나님의 질투는 곧 "하나님의 열정, 하나님의 열심"을 말합니다. 질투라는 히브리어인 '칸나'의 뜻이 '열렬히 ㅣ기하다' '시기로 불태우다'는 뜻입니다. 불타오르는 하나님의 마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모세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을 소멸하는 불로 묘사하였던 것입니다.(신4:24) 한 마디로 중심이 뜨거워 견디지 못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바로 질투인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로 인하여 마음이 불타오를 때, 뜨거워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자녀가 병이 들었을 때, 자녀가 어려운 일을 만나 힘들어 할 때 그것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뜨겁습니다. 성경에는 저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열정, 하나님의 열심이 가득 차 있습니다. 당시 이방나라의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사로잡혀 포로가 되어 갈 때 비웃고 조롱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당신의 열심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열심히 사랑을 베푸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겔39:25) 마침내 여호와의 열심이 이 모든 것들을 이루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사37:32)
이것을 보면 저와 여러분의 구원도 멈추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열정, 그 하나님의 열심 때문에 이루어졌습니다. 포지하지 않고 멈추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열심 때문에 저와 여러분이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질투를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열정, 하나님의 열심이 바로 하나님의 질투입니다.
□ 하나님의 강렬한 사랑
히브리어로 질투라는 단어가 구약에 5번 나옵니다. 그런데 어느 때에 사용되었느냐면 영적인 간음 즉 우상 숭배와 관련되어 있을 때 사용되었습니다.(3~5절) 이것은 곧 하나님의 질투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강렬한 사랑임을 말해 줍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질투는 곧 하나님의 사랑을 말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질투하게 되어 있습니다. 질투가 없는 사랑은 곧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질투는 나 외에 다른 것을 사랑하면 그냥 놔두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질투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되 100% 사랑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독생자를 내어 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100%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2%가 부족한 98%의 사랑도 아닙니다. 100%의 사랑을 원하십니다. 軟弱하여 넘어질지라도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질투는 연인 사이의 사랑의 질투와 같습니다.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그 사람이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우리 마음에 질투가 불처럼 일어납니다.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랑이 클수록 그 질투는 억제하기 힘들 정도로 폭발합니다. 우리 하나님도 마찬가지 입니다. 사랑은 질투입니다.
□ 하나님의 질투를 알라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질투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그 질투를 위해 살았던 한 사람이 나옵니다. 바로(다름이 아니라 곧=다른 까닭이 있는게 아니라) 비느하스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행진하다 모압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남자들이 아름다운 모압 여인들과 음행을 하고 그들의 신전에 들어가 제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백성들 가운데 염병을 내려 2만 4천명이나 죽었습니다. 일 일로 인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이 슬퍼하고 있을 때 이스라엘의 한 남자가 보란 듯이 미디안의 한 여인을 데리고 막사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비느하스가 뒤 따라 들어가 창으로 그 구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러자 염병이 그쳤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비느하스의 그런 행위를 "내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내 노를 돌이켰다"고 말씀하셨습니다.(민25:11) 더 나아가 비느하스의 그런 행위를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민25:13) 비느하스의 질투는 자신을 위한 질투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질투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질투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비스하스가 언약 백성을 질투하기까지 사랑하시는 하님의 사랑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스하스는 하나님의 질투심을 가지고 우상 崇拜를 剔抉하고 淨化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위한 질투심을 가진자는 하나님의 이름이 업신여김을 당하고 모독당함할때 견디지 못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에 비느하스처럼 하나님의 질투를 알고 하나님의 질투심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자를 찾으십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질투를 알기에 우상을 숭배하지 않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질투를 알기에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질투를 알기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런 사람을 찾으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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