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

노염은 잠깐, 은총은 평생/3 : 1000을 기억하라<2013.09.01/ 제25권 35호>

꿈 꾸는 소년 2013. 9. 22. 16:47

<출 20 : 5 ~ 6>

 

 □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

 

 하나님은 "나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 다음 우상숭배는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라고 말씀하십니다.(5절b) 하나님은 하나님외에 다른 신들을 만들어 섬기며 절하는 사람을 향햐여 "나를 미워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우상숭배를 하는 자들을 향하여 "나를 미워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우상숭배가 죄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상을 숭배하는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공식적으로 하나님을 부정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 이렇게 공식적으로 선언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줄곧 바알과 아세라 등 각종 우상들을 숭배해 왔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몰라서 우상을 숭배하였습니까? 아닙니다. 알면서도 자신들의 탐욕 때문에 우상을 숭배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줄 곧 우상을 숭배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미워하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 죄는 미워하시지만 죄인을 矜恤히 여기시는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인을 긍휼히 여기십니다. 죄는 미워하지만 죄인은 사랑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요한복음 8장을 보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데리고 예수님께로 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이 여자를 돌로 치리하였는데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때 주님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8:7절b)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양심의 가책을 받고 그 자리를 떠나갔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떠나고 주님과 그 여자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이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요8:11절b) 주님은 분명히 이 여자의 행위가 죄라는 것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죄인된 그 여자를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주님은 죄는 미워하셨지만 죄인은 사랑하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자져야 할 주님의 마음이고 자세입니다. 동성애 문제를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도 바로 이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성연애자는 죄입니다. 성적 지향을 떠나 창조의 질서를 거스르는 죄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그 죄지은 여인을 긍휼이 여기셨듯이 동성연애자들을 비난하고 정죄하기 이전에 우리도 우리도 그 여혼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구원을 받아야 할 영혼들이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혐오하고 비난만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고 그들의 영혼을 어루만져주고 치료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처럼 다시는 그 지를 짓지 않도록 권명하고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미워해야 합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렇게 우상숭배가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라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6절)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동일한 것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요한복음 14장 21절에서 분명하게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사도 요한 역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요일5:3) 질투하기까지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계명이 결코 무겁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이 계명이 무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명을 주시는 것은 유혹 많은 세상에서 내 영혼을 지키고, 타락한 세상에서 내 영혼을 순결하게 하고, 하나님과 멀어지지 않고,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도록 하기 위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저와 여러분의 유익을 위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쁨과 감사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해야 합니다. 그것이 곧 우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 노염은 잠깐, 恩寵은 평생

 

 하나님은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는 것은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5~6절) 비율로 말하면 3 : 1,000, 4 : 1,000입니다. 노여움이 3이라면 은총은 1,000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진노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노여움은 잠깐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노여움 조차도 깨닫고 돌아오기 위한 하나님의 은총의 일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는 평생동안 지속되는 것이고 영원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품인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도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시30:5)라고 노래했습니다. 노염은 잠깐이요 하나님의 은총은 평생입니다. 다윗 역시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은총에 비하면 너무나 잠깐이었다고 말합니다. 우리 역시 인생을 살다보면 하나님의 징계를 경험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가시 울타리를 경험할 때도 있습니다.그러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노여움은 잠깐 입니다. 장차 저와 여러분이 누리게 될 하나님의 은혜는 영원합니다. 다윗은 이 사실을 믿었습니다. 3 : 1,000, 4 : 1,000을 믿은 것입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가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될 수 없다는 사실을 믿은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다윗은 이 사실을 믿었기에 이렇게 노래합니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혹시 우리 중에 인생의 밤을 만난 분이 계십니까? 혹시 우리 중에 인생의 깊은 밤을 만나 울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저는 금요기도회 시간에 가슴을 치고 통곡하는 성도들의 기도를 듣습니다. 하염없이 흐르는 성도들의 눈물을 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길에 밤을 만나고 그 밤 가운데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온다는 사실을…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칠흙같이 어두운 인생의 밤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반드시 동이 터 오르는 희망이 아침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속절없는 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반드시 흐르는 눈물을 그치고 하나님을 노래하는 기쁨의 아침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야곱처럼 얍복강 나루터에서 씨름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브니엘의 아침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노염은 잠깐이요 하나님의 은혜는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힘들고 어려울 때 문제만 바라보지 말고, 고난의 시간만을 생각하지 말고, 손해 본 것, 억울한 것만 생각하지 말고 3 : 1,000을 기억합시다. 노염을 잠깐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평생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