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

유다의 두 가지 핵심 죄<2014.2.16. 제26권 7호> - 이관직 목사(총신대 신학대학원)

꿈 꾸는 소년 2014. 3. 12. 19:51

<렘 2:13~19>

 

 □ 본문의 배경

 

 개혁자였던 요시야 왕의 재위 13년에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던 예레미야는 유다 왕국이 멸망하여 백성들이 라벨론 포로로 잡혀간 후까지 활동하였던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멸망 과정에서 모든 것을 몸소 경험하며 두 눈으로 보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끝까지 신실하게 외쳤던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예레미야를 통하여 유다의 핵심적인 죄 두 가지를 지적하셨는데 이 죄들은 한국교회와 우리 성도들도 自覺해야 할 핵심적인 죄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이 지적한 주 가지 죄는 사실상 한 자기 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믿는 자가 하나님을 버리게 되면 스스로 저수지를 파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역으로 믿는 자가 스스로 저수지를 파는 행동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 죄의 원인과 결과를 살려봄으로써 오늘의 우리의 모습을 진단하고 회개하며 회복하기를 원합니다.

 

 □ 첫 번째 핵심 죄 : 생수의 근원되는 하나님을 버린 것

 

 유다는 왜 하나님을 버렸을까요? 왜 이것이 그들의 핵심적인 죄가 되었을까요? 더욱 놀라운 것은 사실상 유다 백성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버렸다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사용한 대표적인 防禦機制는 부인이었던 것입니다.(렘7:9~11) 그들을 바알을 좇지 않았다고 하며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더러워진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여전히 사랑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성전 제사도 계곡 하고 있었고 비록 거짓 선지자들이었지만 선지자들의 이야기와 강론을 듣고 은혜 받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실상은 욕심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이방 종교와 관습이 더 매력적으로 보였기 때문에 하나님도 섬기며 이방 신들도 섬길 수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이방 제사의 관능적인 면과 음란한 행위는 유다의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런 종교와 관습을 가진 이방 나라 백성들이 자신들보다 잘 살고 더 멋있게 보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상숭배를 드러내놓고 하는 크리스천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탐욕이 우상숭배라고 지적합니다. 탐욕으로부터 자유로운 크리스찬이 있을까요? 저 자신부터 아니라고 대답할 수 없을 만큼 탐욕은 우리 마음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환경이 주어지지 않아서 그렇지 환경만 주어지면 우리는 적절한 욕구를 넘어서는 욕심을 내는 본성을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재물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날에 있어서 맘몬mammon 신은 그 파워가 대단합니다. 맘모니즘으로부터 자유로운 크리스찬들이 별로 없는 현대사회 속에서 우리 내면의 탐욕과 욕심을 자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長成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이 탐욕의 위험성을 잘 지적했습니다. 탐욕은 에덴동산에서 최초의 인간이 씨름했던 이슈이기도 합니다. 

 

 □ 두 번째 핵심 죄 :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

 

 유다는 왜 스스로 저수지를 팠을까요? 하나님을 떠난 핵심 문제가 탐욕이라고 한다면, 스스로 저수지를 판 동기는 핵심적으로 불안 심리와 관련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죄악은 그 구원의 길을 버리고 스스로 구원의 길을 찾아나선 것에 있습니다. 은혜로주어진 샘물에 의존하는 대신 자신 자력으로 통제할 수 있는 저수지를 판 것입니다. 자력으로 저수지를 판 것은 불안 심리 때문이었습니다.

 "네가 시홀의 물을 마시려고 애굽으로 가는 길에 있음은 어찌 됨이며 또 네가 그 강물을 마시려고 아수르로 가는 길에 있음은 어찌 됨이냐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렘2:18~19) 국가의 안전과 재정적인 안정을 위하여 강대국과 교류하며 그들의 우상까지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만 늘 의지해야 마실 수 있는 작은 샘으로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이방 국가들과 조약을 맺고 교류를 하고 그들의 우상들을 수입하여 세계화의 길에 나선 것은 나라를 안정시키고 부강시키기 위한 인본주의적 노력이있었습니다. '라이켄'은 이집트와 앗수르와의 국방협약은 터진 저수지와 같은 것이었다고 註釋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그 물은 하나님이 주시는 생수와 비교할 때 쓴 맛 때문에 마실 수 없는 물이라고 잘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는 이 본문을 주석하면서 미국의 주요 교단들이 양적으로 감소되는 현상이 진보적인 교회들과 보수적인 교회들 모두 정치 세력들과 연결된데 있다고 지적하면서 정치적인 권력과 손을 잡은 것은 교회의 영적인 영향력을 파괴시킬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그의 이와 같은 지적은 한국 교회 역시 警覺心을 갖고 인식해야 할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다가 저수지를 스스로 판 인본주의적인 행동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도우심에 대한 불신과 현실적인 안전 추구 동기에 起因한 것이었습니다.  

 스스로 저수지를 파는 것은 다른 나라들도 다 하는 방법이며 믿지 않는 자들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합리적인 시도이며 세상적으로 지혜가 있는 방법입니다. 비가 오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서 저수지를 만들고 일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서 저축을 하며 연금을 불입하는 것은 상식적이 방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버리시면 형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매순간 銘心해야 합니다. "네가 의지하는 자들을 나 여호와가 버렸으므로 네가 그들로 말미암아 형통하지 못할 것임이라"(렘2:37) 야고보 사도는 이 사실을 잘 지적합니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며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도 너희가 虛誕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약4:13~16)

 

 □ 예레미야는 본문에서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고백합니까?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생수의 근원(계속 공급하시는 분)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예레미야는 17장 14절에서 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다음과 같이 찬양합니다. "영화로우신 보좌여 시작부터 높이 계시며 우리의 성소이시며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렘17:14). 예레미야 10장 10절에서는 "오직 하나님은 참 하나님이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오 영원한 왕이시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광야에서 기적적으로 반석으로부터 흘러나온 샘물을 마신 민족이었습니다. 결코 다른 것을 의해서는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만 섬기는 성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참된 구원의 길이 있음을 믿고 고백하며 실천하는 성도가 됩시다. 삶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성경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성도가 됩시다. 세속화되어가는 한국교회 속에서 오륜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로 쓰임 받도록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사는 성도가 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