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

평형수를 채워라<제26권 23호 / 2014.06.08>

꿈 꾸는 소년 2014. 9. 28. 12:09

 <시 119:105~107>

 

 □ 균형이 필요하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균형이 필요합니다. 하늘을 나는 새에게도 두 날개의 균형이 필요하고 우리의 몸에도 균형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균형이 필요하지 않는 곳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부터 시작해서 정치 경제 문화 심지어는 우리 마음의 생각까지 균형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에도 균형이 필요합니다. 어떤 분은 오지 말씀만을 강조하며서 성령의 역사를 제한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을 오직 성령의 역령의 역사만을 강조하면서 너무 신비한 현상만을 추구하며 따라갑니다. 균형을 잡으라는 말은 진리를 포기하거나 버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진리를 따라 사는 삶에 지혜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12제자를 파송하시면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마10:16) 고 말씀하셨습니다. 뱀은 짐승주에 가장 지혜로운 짐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비둘기는 평화와 순결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자에는 뱀같은 지혜로움과 비둘기같은 순결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만이 아니라 성경해석에도 균형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균형이 필요합니다.

 

 □ 왜 세월호가 침몰하였는가?

 

 왜 세월호가 침몰했습니까? 균형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세월호가 침몰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갑자기 우회전하면서 배가 균형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배의 방향이 갑자기 바뀌면서 제대로 고정되지 않는 화물들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배는 균형을 잃게 되고 결국 거꾸로 침몰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왜 세월호가 갑자기 균형을 잃고 침몰을 하였습니까? 배의 균형을 잡아 주는 평형수를 다 채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선박에는 평형수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평형수란 무엇입니까? 평형수란 선박 운행 시 배의 무게 중심 곧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배의 밑바닥이나 좌우에 설치된 탱크에 채워 넣는 물을 말합니다. 한 마디로 배의 균형을 잡아주며 복원력을 위해 배의 밑바닥에 채우는 물을 말합니다. 그래서 영어로는 밸런스를 잡아 준다고 해서 평형수를 배러스트 워터(ballast water)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금번 사고가 난 세월호는 평형수를 1/4밖에 채우지 않고 운항을 한 것입니다. 원래 이 배는 2030톤의 평형수를 채워야 하는데 580t의 평형수만 채웠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평형수가 많아지면 기름값이 더 많이 들게 되고 화물을 더 많이 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배의 안전보다 더 많은 수익을 얻고자 평형수를 채우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는 한 마디로 인간이 탐욕이 만든 인재인 것입니다. 종교의 탈을 쓴 유병언 일가의 탐욕이 만들낸 참사인 것입니다.

 

 □ 인생은 항해이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세월호 같은 인생의 배를 타고 세상이라는 바다를 항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보다 앞서 인생을 살았던 인생의 선배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가리켜 바다로 비유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새을 가리켜 바다를 항해하는 배와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인생을 노래했던 시인들은 우리 인생을 茫茫大海에 떠 있는 一葉片舟와 같다고 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의 인생을 항해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바다처럼 우리 인생의 바다에도 순풍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강풍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바다에 크고 작은 풍랑이 일 듯이 우리의 인생의 바다에도 크고 작은 풍랑이 있습니다. 유리바다처럼 잔잔한 바다가 없듯이 우리의 인생이 항해에도 언제나 순풍에 돛을 달고, 유리 바다에서 비끄러지듯이 나아가는 인생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예기치 않는 먹구름이 몰려오고 천둥벙개가 치고 나를 삼킬 것 같은 큰 풍랑을 만나기도 합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나아가던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서 풍랑을 만났습니다. 아니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가던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 한 복판에서 풍랑을 만나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과 함께 말씀에 순종하여 나아가는 우리의 삶에도 풍랑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나 사명을 따라 사는 자의 인생에도 내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거친 폭풍이 있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말씀이 평형수다.

 

 그러므로 세상을 항해하는 우리 인생의 배에도 평형수가 필요합니다. 우리 인생의 배에도 어떤 폭풍이 몰아치고 파도가 밀려와도 균형을 잡아주고 다시 일어서게 만드는 평형수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의 배에 우리 인생의 배에 필요한 평형수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의 말씀이 평형수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넘어지지 않도록 침몰하지 않도록 든든히 세워주기 때문입니다.(행20:32절b) 오늘 본문을 보면 시편의 기자도 이렇게 노래합니다.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107절) 시편 기자는 그냥 살아나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해달는 것입니다. 이 편의 저자는 이 극심한 고난 속에서 나를 일으켜 세워주고 나를 다시 살릴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이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 나를 살아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해 달라고 간구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의 평형수가 있는 자는 실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시37:31) 말씀의 평형수가 충만한 자는 산더미 같은 파도가 나를 삼키려고 몰려와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행27:24)

 

 □ 말씀의 평형수를 채워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을 항해하는 우리에게 말씀의 평형수가 필요합니다. 사탄의 광풍과 음란의 파도에 내 영혼이 침몰하지 않으려면 지금 내 인생에 필요한 말씀의 평형수를 채워야 합니다. 그러면 말씀의 평형수를 채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사도 바울이 골3:16절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말씀이 내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하는 것"입니다.(골3:16절)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하도록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 말씀을 즐거워하며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입니다.(시1:2) 하나님의 말씀을 내 입과 내 마음에 두는 것입니다.(신30:14) 하나님의 말씀을  내 입과 내 마음에 두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주일학교 교육의 대부분은 요절 암송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암송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떻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별로 암송하지 않습니다. 이슬비 전도 편지로 유명한 여운학 장로님이 '자녀 사랑은 말씀 암송이다'라는 책을 내었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암송할 때 자녀가 지혜를 얻게 되고, 성품이 온전해 지고, 신앙이 단단해 지고, 거룩한 습관을 갖게 되고, 믿음이 세워진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그 말씀을 암송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시간이 없고 바쁘기 때문에 말씀을 가까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니 우리 안에 있는 탐욕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말씀의 평형수를 채워햐 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내가 붙들고 일어설 수 있는 말씀의 평형수가 내 안에 있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