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 14:8~9>
□ 큰 은혜를 받은 삼손
성경에는 참 많은 인물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삼손은 성경에 나오는 그 어떤 사람보다 특별한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삼손은 특별한 은혜로 잉태되었고 거룩하게 구별된 나실인을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어두운 시대에 블레셋 압제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여 낼 사사로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어두운 시대에 블레셋 압제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여 내 사사로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믿음이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영적인 부모 밑에서 신앙의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입니다. 그 시대에 이 보다 더 큰 복을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이 보다 더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젊은 사자에게 물어 뜯겨 죽을 수 밖에 없는절체절명의 위기 가운데서 보호하심을 입었습니다. 딤나에 내려온 삼손이 부모를 따돌리고 딤나의 포도원에 이르렀을 때 젊은 사자가 삼손을 보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습니다.(5절) 젊은 숫 사자가 삼손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는 것은 삼손을 해치기 위해 으르렁거리며 포효를 하며 달려들었음을 말합니다. 그런데 삼손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습니다. 주변에 그를 도와줄 사람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삼손은 이제 도망도 가지 못하고 사자에게 물어 뜯겨 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사로서 사명도 감당하지 못한 채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했습니다.(6절)
삼손은 그 초월적인 힘으로 젊은 숫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듯이 찢어버렸습니다. 삼손에게 얼마나 강한 힘이 임했으면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고 젊은 숫 사자를 찢어버렸겠습니까? 인류 역사상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총으로 쏘아 죽이고 칼과 창으로 찔러 죽이는 일은 있었지만 달려드는 사자를 맨 손으로 찢어 죽인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것을 볼 때 삼손은 정말 큰 은혜를 받는 사람입니다. 아니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 작은 유혹 앞에 넘어진 삼손
그런데 이런 큰 은혜를 받은 삼손이 작은 유혹 앞에 넘어집니다. "얼마 후에 삼손이 그 여자를 맞이하려고 다시 가다가 돌이켜 그 사자의 주검을 본 즉 사자의 몸에 벌 떼와 꿀이 있는지라"(8절) 삼손이 그 여자를 맞이하려고 다시 그 길을 가다가 돌이켜 그 사자의 주검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 죽은 사자의 몸에 벌 떼와 꿀이 있었습니다. 삼손은 죽은 사자 안에 있는 꿀을 보는 순간 손으로 그 꿀을 떠서 먹고 말았습니다.(9절a) 나실인의 규례에 의하면 나실인은 절대로 죽은 시체를 가까이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나실인인 삼손이 말씀을 어기고 손으로 꿀을 찍어서 먹은 것입니다. 먹어보니까 너무나 맛있었어요, 꿀이니까 얼마나 달콤했겠어요. 그래서 자기만 먹는 것이 아니라 그 꿀을 부모에게도 갖다 그려서 먹게 했습니다.(9절b) 만일 삼손이 자기가 찢어 죽인 그 사자가 죽은 채로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랬다면 아마 삼손은 그래 "나는 나실인이니까 주검을 가까이 해서는 안 되지" 하면서 그 현자을 쉽게 떠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삼손을 그 꿀의 유혹 때문에 말씀을 어기고 손으로 그 죽은 사자의 몸을 만지고 꿀을 떠서 먹은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삼손은 큰 은혜를 받은 자로서 작은 유혹에 넘어진 것입니다. 아무리 꿀의 유혹이 커 보여도 삼손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에 비교하면 그것은 작은 유혹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큰 은혜를 받은 삼손이 꿀이라는 작은 유혹 앞에서 넘어졌습니다. 목숨을 건진 것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목숨을 건짐 받은 삼손이 죽음의 문제도 아닌 작은 유혹 앞에 넘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큰 은혜를 받은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작은 유혹 앞에 넘어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여리성의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아간이라는 사람이 전리품이라는 작은 유혹에 넘어졌습니다.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압제에서 해방되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이 구원의 은혜가 얼마나 컸으면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큰 은혜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에 살면서 너무나 쉽게 작은 유혹에 넘어졌습니다. 이런 엄청난 은혜를 받은 자들이 가나안 우상이라는 작은 유혹에 넘어져 우상을 숭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 모두는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그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고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주를 수 있는 자녀가 되었습니다. 언제든지 예수님의 보혈을 힘입어 은혜의 보좌 앞에 당당히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내 안에 내주하심으로 내 몸이 성전이 되었습니다. 이 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이런 큰 은혜를 받은 우리들이 작은 유혹에 넘어집니다. 받은 은혜에 비하면 우리가 받은 유혹은 너무나 작은 것인데 그 작은 유혹 앞에 삼손처럼 넘어지고 있습니다.
□ 왜 작은 유혹에 넘어지는가?
그러면 큰 은혜를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왜 작은 유혹 앞에 넘어집니까? 달콤하기 때문입니다. 유혹이 꿀처럼 달콤하기 때문입니다. 꿀은 달꼼합니다. 삼손이 왜 은혜의 현장에서 넘어졌습니까? 바로 죽은 사자의 몸 안에 있었던 달꼼한 꿀 때문이었습니다. 그 달꼼한 꿀 때문에 그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넘어진 것입니다. 왜 삼손이 계속적으로 넘어지면서도 계속적으로 배신을 당하면서도 여인의 품을 떠나지 못했을까요? 여인의 유혹이 그만큼 달콤했기 때문입니다. 여인의 품이 그만큼 달콤했기 때문입니다. 왜 세상의 사람들이 돈을 들여가면서 룸살롱을 찾고 유흥가를 찾습니까? 왜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과 돈을 들여가면서도 죄를 짓습니까? 낙이 있기 때문입니다. 죄악이 가져다주는 순간의 짜릿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재미도 없고 순간의 짜릿함도 없는데 누가 자기의 시간과 돈을 들여 죄를 짓겠습니까? 죄에는 낙이 있습니다.(히11:25) 죄는 언제나 우리에게 영원한 즐거움을 가져다 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즐거움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그런게 그 순간의 짜릿함과 순간의 쾌감 때문에 영원한 것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죄이 유혹은 언제나 부드럽고 달콤합니다. 그러나 열매는 너무나 씁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죄의 유혹 때문에 평생 쌓아놓았던 모든 것들이 한 순간에 사라지고 마침내 목숨까지 잃은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사탄은 처음부터 우리에게 평생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늘만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그 오늘이 평생이 됩니다. 죄의 유혹은 달콤하지만 그 결과는 언제나 죽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가르칩니다. 이 달콤한 죄의 유혹이 순간의 즐거움을 가져다 주지만 우리의 인격을 파괴시키고 가정을 무너뜨리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유혹 시험이 몰려 올 때면 내게 베풀어주신 그 크신 은혜를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받은 은혜를 생각해 보십시오. 죽었던 나, 절망 중에 있었던 나에게 찾아오셔서 나를 구원해 주시고, 나를 품에 안아 주시고 일으켜 세워주신 그 은혜를 생각해 보십시오. 사탄의 유혹이 얼마나 달콤하고 매력적으로 보여도 주님이 내게 주신 그 큰 은혜를 생각해보면 작은 유혹에 불과합니다. 달콤한 유혹 때문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배신하지 마십시오. ◑
'오륜교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께 富饒한 사람 <제26권 28호 / 2014.07.20> (0) | 2014.09.28 |
---|---|
축복의 통로를 빼앗기지 말라<제26권 27호/2014.07.13> (0) | 2014.09.28 |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은혜<제26권 25호 / 2014.06.29> (0) | 2014.09.28 |
시작이 좋았던 사람<제26권 24호 / 201.06.15> (0) | 2014.09.28 |
평형수를 채워라<제26권 23호 / 2014.06.08> (0) | 2014.0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