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

축복의 통로를 빼앗기지 말라<제26권 27호/2014.07.13>

꿈 꾸는 소년 2014. 9. 28. 12:11

 <삿 14:14>

 

 □ 초월적인 힘을 가진 자 - 삼손

 

 이 땅에 존재했던 사람들 중에 가장 힘이 센 사람은 로마의 신화에 나오는 헬라클레스가 아니라 삼손입니다. 삼손은 신화적인 인물이 아닙니다. 실제로 존재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삼손은 힘의 대명사입니다. 삼손에게 주어진 그 힘이 어느 정도 였습니까? 우리가 지난 시간에 생각했던 것처럼 자기를 향하여 소리를 지르며 달려드는 숫 사자를 염소새끼를 찢듯이 찢어버렸습니다. 자신을 결박한 밧줄을 불탄 삼과 같이 끈어 버렸습니다. 나귀의 턱 뼈 하나로 블레셋 사람 천명을 쳐 죽였습니다. 자기를 죽이려는 자들 앞에서 성 문짝들과 두 문설주와 문빗장을 빼어 그것을 어깨에 메고 헤브롯 앞산 꼭대기까지 나아갔습니다. 당시 성문은 그 성읍의 힘과 통치권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크고 견고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삼손이 그 성문을 문설주와 문빗장까지 송두리째 뽑아서 어깨에 메고 가벼운 등산을 하듯이 가사에서 60km 떨어진 헤브론 앞산 꼭대기까지 나아갔습니다. 인류 역사에 이런 사람은 없었습니다. 삼손에게 주어진 힘은 상상을 초월한 초월적인 힘이었습니다.

 

 □ 힘의 근원은 여호와의 영

 

 그런데 삼손에게 있었던 이 엄청난 힘은 삼손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삼손은 골리앗이나 마크 헨리처럼 덩치가 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데니스 로저스처럼 남들보다 더 열심히 훈련을 해서 갖게 된 힘도 아니었습니다. 삼손이 이런 초월적인 힘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여호와의 영이 강하게 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삼손이 가졌던 그 힘의 근원이 바로 여호와의 영이심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삿14:6,19,15:14~15)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삼손에게 이런 엄청난 힘을 주셨을 까요? 사사로서의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시 블레셋 철병거로 무장한 강한 군대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스라엘은 군대의 조직도 갖추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사로 부름받는 삼손에게 초월적인 힘을 주사 그 힘으로 블레셋의 압제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내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통해서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언제나 능력이 함께 주어진 다는 것입니다. 소심하고 두려움이 많은 기드온을 사사로 부르신 하나님은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300명의 용사로 13만 5천의 대군을 물리치고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여러 자기 이유를 대면서 "저는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모세에게 능력의 지팡이를 들려주사 자기 백성을 구원해 내는 일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 부음을 받게 하사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 축복의 통로

 

 이렇게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힘과 능력과 은사를 주시는데 이것이 바로 축복의 통로입니다. 축복의 통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들을 흘러 보내는 도구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능력이 지팡이를 들려 주셨습니다. 모세는 그 지팡이를 가지고 애굽으로 내려가 여러 자기 기적을 행하였습니다. 그 지팡이로 홍해를 가리킬 때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그 지팡이로 반석을 칠 때 반석에서 샘물이 나왔습니다. 그 지팡이를 들고 산에 올라가 기도할 때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지팡이 그 자체가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지팡이를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에게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바벨론의 박수와 술객보다 10배나 뛰어난 지혜와 총명을 주셨습니다.(단1:20) 에스더에게 죽으면 죽으리라는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허락해 주셨고, 엘리사에게는 갑절의 성령의 역사를 주셨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나아가는 70인 전도단에게는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셨습니다.(눅10:19) 아리마대 사람 요셉에게는 물질을 축복의 통로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예수님이 돌아가셨을 때 자신의 준비된 무덤을 예수님께 내어 드릴 수 있었습니다. 루디아 역시 부요한 자로서 자신의 집을 내어 놓음으로 유럽의 첫 번째 교회인 빌립보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삼손에게 초월적인 힘을 주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삼손에게 이런 전무후무한 초월적인 힘을 주셨습니까? 그 강력한 힘으로 블레셋의 압제아래서 고통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삼손에게 주셨덪 그 힘은 바로 부르심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통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삼손은 그 축복의 통로를 바르게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그 축복의 통로를 잃고 말았습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삼손은 그 축복의 통로를 잃은 것이 아니라 유혹이라는 사탄의 공격 앞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 왜 삼손은 축복의 통로를 빼앗겼는가?

 

 그러면 왜 삼손은 축복의 통로를 빼앗겼을까요? 축복의 통로로 주신 그 힘을 바르게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삼손은 하나님께서 주신 그 엄청난 힘을 블레셋 압제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여 내는 일에 사용해야 하는데 개인의 복수심을 불태우는데 사용하였습니다. 축복의 통로로 주신 그 엄청난 파워를 자신의 정욕을 위해, 자신을 과시하고 그러내는데 사용하였습니다. 삼손이 피로연에서 수수께끼를 낸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수수께끼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먹는 자에게는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삿14:14절a) 여기서 먹는 자, 강한 자는 젊은 사자를 말하고 먹는 것과 단 것은 꿀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젊은 사자를 찢어 죽였는데 그 죽은 사자의 몸 안에 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삼손은 자신의 개인적인 사건을 수수께끼로 내었을까요? "나는 바로 이런 사람이다"라는 것을 드러내고 싶어서입니다. 좀더 직설적인 표현을 쓴다면 자신이 찢어죽인 그 젊은 사자가 누워 있는 그 현장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이처럼 삼손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축복의 통로를 자신이 과시하고 드러내는데 사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삼손의 모습 속에 우리의 모습이 있고 한국교회의 모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건강과 물질과 사회적 지위와 달란트를 자신의 정욕만을 위해 사용합니다. 아니 교회는 교세를 자랑하고 헌금을 자랑하느라 시대적 사명을 소홀히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계속적으로 하나님께서 축복의 통로로 주신 그 귀한 것들을 가지고 자신의 정욕을 위해 살고 자신을 드러내고 과시하는 삶을 살게 된다면 우리는 지금 그 축복의 통로를 잃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 사탄의 유혹 앞에 축복의 통로를 빼앗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여러분 각자에게 주신 그 물질, 그 건강, 그 지위, 그 은사와 능력을 하나님의 사랑을 흘러 보내는 일에 사용하십시오. 주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일에 사용하십시오. 다음 세대를 세우고 일으키는 일에 사용하십시오. 예수님은 달란트 비유를 말씀하신 다음 "무릇(대체로 헤아려 생각하건대) 있는 자는 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마25:2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축복의 통로로 흘러 보내는 자는 더 많은 것을 받아 누리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