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2:13~21>
□ 두 가지 사건, 하나의 메시지
오늘 본문은 두 개의 사건이 이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형과 유산을 나누게 해달라고 예수님의 판결을 구하는 일이고, 둘째는 우리가 잘 아는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사실은 실화이고, 그 실화에 대하여 설명해주기 위해서 예수님은 바울의 비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두 가지 사건이, 하나의 동일한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한 사람이 나아와서 요구합니다.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눅12:13). 유산을 나눠달라고 요구하며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은 누구입니까? 바로 동생입니다. 자기의 형이 모든 유산을 가져가서 억울했는지 동생이 와서 구하고 있습니다. 그런 동생에게 예수님은 단호하게 거부하시고, 오히려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사실 이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사람은 부모의 유업을 혼자 독차자지한 형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동생을 향하여 이 부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관점에서는 그 유업을 혼자 차지한 형이 어리석은 부자가 아니라, 그 유업을 어떻게 좀 나누어 보겠다고 따라다니는 동생 역시 '어리석은 부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비유는 재산이 많고 적음에 따라서 다르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어지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자기에게 나아온 이 동생에게 무엇을 지적하고 싶은 것일까요? 그리고 이 사람을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이 사람과의 마지막 대화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눅12:15). 예수님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재물의 양입니까? 아닙니다. 바로 그 안에 있는 '탐심'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이 부자인지 가난한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데 그 안에 무엇이 자리 잡고 있습니까? 자기의 형에게서 재산을 좀 나누고 빼앗고 싶은 탐심이 그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에서도 이 부자에게 어떤 마음이 있습니까? 바로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싶은 탐심입니다.
□ 탐심이란?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탐심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나만을 위한 것입니다.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 쌓아 두리라"(눅12:18). 부자의 이 말에 특히 강조된 언어가 나옵니다. 바로 '나'입니다. 부자가 말한 내용을 살펴보면 '내가'라는 말이 6번이나 반복됩니다. 그에게는 모든 일에 나밖에 없습니다. 내가 부유해야 되고, 내가 먹을 것이 많아야 되고, 내 노후를 위해 쌓아야 되는 너무도 철저히 자기 자신의 安危와 평안만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내가 모든 것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바로 탐심인 것입니다.
두 번째로, 탐심은 쌓아두기만 하는 것입니다.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눅12:19). 그가 무엇을 했습니까? 오늘 본문에 '쌓아두라'라는 단어가 4번 이나 반복됩니다. 왜 쌓아둘까요? 현재의 만족에 그치지 않고, 평생을 위해 다 모아두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상황과 상관없이 내가 잘 살기 위해 많이 쌓아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뭐라고 합니까? 바로 탐욕스러운 마음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쌓으면 정말 그게 보장해 줄까요? 내가 평생 안전할까요?
세 번째로, 탐심은 먹고 마시고 즐기기 위한 것입니다.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눅12:19) 자산이 가진 물질로 자신이 즐기고 싶은 대로 사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은 것을 오늘 성경은 바로 탐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라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이 탐욕을 이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부요하게 사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12:21) 그렇다면 하나님께 부요하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첫째로, 하나님께 부요하다는 것은, 물질의 부요보다 말씀의 부요입니다. 본문의 이 어리석은 부자는 자기 영혼을 향하여 뭐라고 외칩니까?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내 영혼이 평안아 평안히 쉬라'고 합니다. 그는 물질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이제 영혼이 만족하여 행복할거라고 합니다. 정말로 물질을 많이 쌓아두면 행복합니까? 정말로 물질을 많이 쌓아두면 만족감을 느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물질을 쌓아두었다고 부요하고, 행복한 게 아닙니다. 우리가 구해야 하는 것은, 필요한대로, 구하는 대로 채우시는 하나님을 믿고 자족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질 때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 부요하다는 것은, 나에게 부요함보다 이웃에게 부요함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부자는 순전히 자기 자신 밖에 없습니다. 나만 6번 반복하고 있고 거기에 너와 이웃, 다른 사람은 전혀 按配하지 않습니다. 자기만 배부르면 되고, 자기만 만족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양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의 생명의 주인이시고, 이 모든 만물의 주인이 내가 아닌 하나님이심을 믿는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 없을 것입니다. 특별히 주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동일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곧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 이웃을 등한히 여긴다면 그것은 신앙의 위선과 거짓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 바로 이웃을 함께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저 한 영혼을 위하여 끝까지 손해 보셨다면, 나도 기꺼이 손해 볼지라도 그 영혼을 품어줄 수 있는 하나님께 부요한 사람이 되길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부요하다는 것은, 이 세상이 아닌 하늘에 상급을 쌓은 것입니다. 이 따에서의 부요와 만족을 누리는 자를 오를 성경에서 뭐라고 말합니까? 바로 '어리석은 자여'라고 말합니다. 이 땅에서의 만족이 모든 것인 양 살아가는 현세대의 사람들을 하나님은 어리석다고 평가하시는 것입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20~21) 예수님은 하늘에 보물을 쌓아야 되는 이유를 말씀하시면서, 그것이 곧 우리를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어야 합니다. 내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서 보물도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만족에 내 마음을 두면 세상의 물질을 추구하고, 하나님께 마음을 두면 천국에 상급을 쌓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의 마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 성경에 나온 어리석은 부자의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께 부요한 우리의 인생이 되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뜻을 따라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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