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제27권 17호 / 2015.04.26>

꿈 꾸는 소년 2015. 4. 30. 10:58

 <고후 6:1>

 

 □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

 

 우리 인생은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능률이 다르고 인생의 가치와 행복이 결정됩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사도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1절a) 바울은 지금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勸勉( 알아듣로록 권하고 격려하여 힘쓰게 함.)하면서 1인칭 단수를 사용하지 않고 1인칭 복수인 우리를 사용하여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방인의 使徒(거룩한 일을 위하여 헌신하는 사람.)로 부름을 받은 자신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 모두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전 3:9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同役者(선교 따위의 일을 함께 수행하는 사람.)들이요"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廣大(크고 넓음)한 우주를 創造(①전에 없던 것을 처음으로 만듦. ②神이 우주 만물을 처음으로 만듦. ③새로운 성과나 업적, 가치 따위를 이룩함.)하신 全能하신 분이십니다. 어떤 일을 행하심에 있어부족함도 없으시고 누구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軟弱한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연약한 우리와 함께 일하신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事實(① `사실이지` 또는 `또는 `사실 말이지` 꼴로 쓰여) 자신의 말이 옳다고 강조할 때 쓰는 말. ②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 ③(`사실은` 꼴로 쓰여) 겉으로 드러나지 아니한 일을 솔직하게 말할 때 쓰는 말.) 하나님 편에서 본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연약한 우리 인간과 함께 일하신다는 사실은 분명 걸림돌이 되고 짐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不拘하고[「…에,-음에」(‘-에도/-음에도 불구하고’ 구성으로 쓰여;‘-음에도’ 대신에 ‘-ㄴ데도’가 쓰이기도 한다) 얽매여 거리끼지 아니하다. 물구하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와 함께 일하십니다.

 

 □ 왜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일하시는가?

 

 첫째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우리 인간을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지으실 때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당신의 形象(사물의 생긴 모양이나 상태.)을 따라 지으셨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을 따라 우리 인간을 지으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대리통치자로 세우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타락하기 이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짐승들의 이름을 지어주며 모든 피조물을 정복하며 다스렸던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구원하사 우리를 자녀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權勢를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 한 그보다 큰일도 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4:1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의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너희느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吩咐(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명령이나 지시를 내림. 또는 그 명령이나 지시.)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주님의 지상명령이라고 부릅니다.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여 자녀 삼으실 뿐만 아니라 자녀된 우리들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오늘도 우리와 함께 일하십니다. 그러므로하나님은 오늘도 당신과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성경을 보면 복음의 증거와 하나님 나라의 확장도 사람을 통해 이루십니다.(롬10:14절b~15절a) 하나님은 출애굽의 역사도 모세를 통해 이루셨고, 가나안의 정복도 여호수와를 통해 이루셨습니다. 심고 거두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고전3:6)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실 때에도 사람을 통해 그 일을 행하셨습니다. 당신의 일터를 변화시키는 일도 사람을 통해 이루십니다. 기도의 응답도 사람을 통해 주어집니다. 부르심의 소명도 사람을 통해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도 사람을 통해 경험하게 하십니다. 

 

 □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도이 받지 말라"(1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문자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空虛(①아무것도 없이 텅 빔. ②실속이 없이 헛됨.)하게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문자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공허하게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면 "은혜를 받는 자 답게 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은혜란 무엇입니까? 은혜란 히브리어로 '헤세드' 헬라어로 '카리스'라는 단어로서 받을 만한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값없이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好意(친절한 마음씨. 또는 좋게 생각하여 주는 마음.)와 사랑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이 예수를 믿고 구원받음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엡2:8) 그런데 성경을 보면 죄 사함을 얻고 구원을 얻은 것만이 은혜가 아니라 삶 전반에 걸쳐 이 은혜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는 것은?

 

 첫째로, 이단의 사상을 받아 들이는 것

 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교회 안에 가만히 들어와 바울이 전한 복음 이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도들 중에 일부는 그 말에 현혹되어 은혜의 복음 자체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고후11:4) 오늘 주변을 보면 복음의 진리 위에 굳게 서지 못하고 迷惑(①무엇에 홀려 정신을 차리지 못함. ②정신이 헷갈리어 갈팡질팡 헤맴.)의 영을 받아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복음을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복음에 만족하지 못하고 어떤 색다른 것, 신비한 것을 찾아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는 사람들입니다.

 

 둘째로, 거리끼는 삶을 살아 職分이 誹謗(남을 비웃고 헐뜰어서 말함.)을 받는 것.

 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은혜로 구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거리끼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 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3절) 거리끼지 않는다는 말은 (①어떤 물건의 이지러지거나 깨어지거나 상한 자국. ② 어떤 물건의 모자라거나 잘못된 부분. ③사람의 성격이나 언행에 나타나는 부족한 점.)이 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和睦(서로 뜻이 맞고 정다움.)하게 하는 직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을 짓고 猜忌(남이 잘되는 것을 샘하여 미워함.)와 다툼과 忿(말썽을 일으키어 시끄럽고 복잡하게 다툼.)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甚至於(더욱 심하다 못하여 나중에는.)는 아비의 아내를 취하는 淫行도 있었습니다. 은혜를 받았다고 말하면서도 더럽게 하는 것으로부터 자신을 깨끗하게 지키지 못했습니다. 은혜를 받았다고 말하면서도 거리끼는 삶을 살아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직분이 비방을 받게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직분은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직분에 합당한 자로 사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 왜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어 받는가?

 

 그러면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하는 삶을 살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하나님의 은혜는 귀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을 통하여 주어진 것입니다.(고후5:21) 우리 하나님은 이 놀라운 은혜를 주시기 위해 죄 없는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받아야 할 모든 저주를 받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이 놀라운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은혜를 아는 자는 아무렇게 살 수 없습니다. 바울은 이 놀라운 은혜가 헛되지 않기 위해 다른 사도보다 더 많은 수고(일을 하느라고 힘을 들이고 애를 씀. 또는 그런 어려움.)를 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