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 1:11~12
□ 견딤과 오래 참음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두 번째 기도는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옥중에서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11절) 우리의 신앙 생활은 믿음의 선한 싸움이고 달려갈 길을 달려가는 경주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에겐 견딤과 오래 참음이 필요합니다. 견딤과 오래 참음이 없이 어떻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달려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은의 主요 또 穩全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1b~2a)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바울이 기도했던 견딤과 참음이란 무엇을 말할까요?
견딤과 오래 참음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原語(번역하거나 고친 말의 본디 말)的 意味(말이나 글의 뜻)로 보면 견딤은 환경적 어려움에 屈服(힘이 모자라서 복종함)하거나 피하지 않고 그 환경에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견디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오래 참음은 대인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 가운데서 복수하지 않고 오래 참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람들은 환경적인 어려움속에서도 견디어 낼 수 있어야 하고 인간 관계의 어려움 속에서도 오래 참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다 보면 내가 처해 있는 상황과 환경으로 부터 어려움을 당하고 인간관계로 인하여 갈등을 겪을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患難(근심과 재난)을 당하고 逼迫(바싹 죄어서 몹시 괴롭게 굶) 을 받을 때에만 인내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관계에도 인내가 필요합니다. 인간관계의 葛藤(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목표나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적대시하거나 충돌함. 그런 상태)을 克復(악조건이나 고생 따위를 이겨 냄)하고 좋은 관계를 維持(어떤 상태나 상황을 그대로 보존하거나 변함없이 계속하여 지탱함)하려면 오래 참음이 필요합니다.
왜 많은 관계들이 깨어지고 위기를 맞습니까? 오래 참고 기다려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다려주지 못하는 躁急(참을성이 없이 몹시 급하다)함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견딤과 오래 참음을 문제를 回避(꾀를 부려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지지 아니함)하거나 무관심하는 것으로 錯覺(어떤 사물이나 사실을 실제와 다르게 지각하거나 생각함)하고 있습니다. 견딤과 오래 참음은 문제를 회피하거나 나 몰라라 하는 식으로 무관심 것이 아닙니다. 諦念( 희망을 버리고 아주 단념함)이 아닙니다.
□ 예수님의 견딤과 오래 참으심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어떻게 배신과 십자가의 고난을 견디어 내시고 오래 참으셨습니까? 애써 무관심하시고 회피하심으로 오래 참으셨습니까? 아닙니다. 주님은 온갖 羞恥(다른 사람들을 볼 낯이 없거나 스스로 떳떳하지 못함. 그런 일)와 嘲弄(비웃거나 깔보면서 놀림)을 받으시고 채찍에 맞으시며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의 언덕길을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에 달려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決코(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굴복하거나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배신에 이를 갈거나 화를 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열두군단이나 되는 하늘의 찬사를 동원하여 그들을 복수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다'라며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 앞에 굴복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苦難(괴로움과 어려움)을 피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아니 자신을 배신하여 자신을 때리며 죽이는 자들에 대하여 복수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주님은 굴복하지도 않고 피하지도 않고 복수하지도 않으시면서 오래 참고 견디여 내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사리나 원리, 원칙 등에 어긋나지 아니하게) 견딤과 오래 참음입니다.
그런데 견딤과 오래 참음은 우리 신앙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다 필요합니다. 인내를 필요로 하지 않는 곳은 하나도 없습니다. 선을 행하는 일에도 인내가 필요합니다.(갈6:9)
甚至於(더욱 심하다 못하여 나중에는)는 기도의 응답에도 인내가 필요합니다. 다니엘이 기도를 시작하던 그 첫날에 하나님은 다니엘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런데 응답에 자신에게 주어지기 까지는 20일 동안의 기다림이 필요했습니다.(단10:12b~14a) 우리의 구원에도 견딤과 오래 참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어떤 현상이나 사물 따위가 원인이나 이유가 되다)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10:22)고 말씀하셨고,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눅21:19)고 말씀하셨습니다.
□ 기쁨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라
그런데 본문을 보면 바울은 기도할 때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라고 기도 했습니다. 경험해 보신 분을 아시겠지만 견디어 내고 오래 참는다는 게 얼마나 힘들고 어렵습니까?
그런데 바울은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해 달라고 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墮落(올바른 길에서 벗어나 잘못된 길로 빠지는 일)한 죄성을 가진 우리 인간은 기쁨으로 모든 일에 견디어 내고 오래 참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 힘과 의지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내 안에 역사하면 가능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11절a) 라고 기도 했습니다. 그의 영광의 힘은 오직(여러 가지 가운데서 다른 것은 있을 수 없고 다만) 하나님의 힘을 말합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의 힘을 그의 榮光(빛나고 아름다운 영예)의 힘으로 표현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영광 중에 일하실 때 그 힘이 바로 능력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영광의 힘이 능력으로 나타나게 되면 우리는 그 능력의 역사하심을 따라 기쁨으로 모든 일에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 기업을 주신 아버지께 감사하라
바울이 옥중에서 그치지 않고 기도했던 세 번째 기도의 제목은 기업을 주신 아버지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12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신 다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어둠 가운데 있던 우리를 빛 가운데로 인도하사 성도의 기업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성도의 기업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성도의 기업은 천국을 말합니다.(마25:34)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약속된 하나님의 나라의 賞給(상으로 줌 그런 돈이나 물건)을 말합니다.(벧전1:4)
그러므로 "빛 가운데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감사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보다 더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모든 죄를 해결 받았고 영생을 얻었고 하나님이 자녀가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썩어지지 않을 천국의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신33:29a) 누가 행복한 사람입니까?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행복의 기준은 돈이 아닙니다. 출세가 아닙니다. 구원입니다.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所出(논밭에서 나는 곡식. 그 곡식의 양)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3:17~18) 하박국의 선지자는 모든 것이 사라지고 절대 절망의 상황 속에서도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였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사람입니까?
내가 처한 상황을 뛰어넘어 나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신 그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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