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하 5:1 ~ 6>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尊貴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勇士이나 나병환자더라. 2.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아오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隨從들더니. 3.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시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4. 나아만이 들어가서 그의 주인께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소녀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 하니. 5. 아람 왕이 이르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하더라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衣服 열 벌을 가지고 가서. 6.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의 나병을 고쳐 주소서 하였더라.
□ 나아만은 누구인가?
나아만은 아람 왕의 군대장관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尊貴한 자"였습니다(1절). 이 말은 왕으로부터 절대적인 寵愛와 信任을 받는 者임을 말합니다. 왜 나아만이 이렇게 아람 왕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가 되고 백성들로부터 尊敬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그것은 나아만이 전쟁에서 나라를 구하여 내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시대든지 전쟁의 英雄은 왕과 백성들로부터 최고의 待遇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나아만은 財物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병을 고침 받기 위해 엘리사를 만나러 갈 때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을 가지고 떠났습니다. 이것을 보면 나아만은 권력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재물을 가지고 있는 富饒한 자였습니다. 나아만은 그야말로 成功하고 出世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센 병자, 곧 나병환자 였습니다(1절). 당시 나병은 치료가 불가능한 그런 병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병은 가장 거추장스럽고 수치스러운 병으로 알려져 있어서 누구든지 이 병이 걸리면 가족들과 사회가 사회에서 격리가 되어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나아만이 이런 수치스럽고 詛呪스러운 나병에 걸린 것입니다.
□ 우리의 인생에도 '그러나'가 있다.
나아만은 당시 부와 권력과 명예와 모든 것을 두루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나병환자였습니다. 영어 성경에 보면 'He was a valiant soldier, but he had leprosy' 중간에 뭐가 있습니까? 'but'이 있습니다. 나아만의 인생에 'but'이 있었듯이 우리 인생에도 'but' '그러나'가 있습니다. 오늘 당신의 삶에, 오늘 당신의 가정에 갑자기 찾아온 '그러나'는 무엇입니까? 남편의 外道입니까? 事業의 失敗입니까? 疾病입니까? 우리의 인생에 갑자기 찾아온 '그러나'는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뿐만 아니라 두려움의 포로가 되게 합니다. 꿈과 소망을 한 순간에 빼앗아 가버립니다. 하지만 그의 인생에 '그러나'가 있었기에 고침을 받는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그러나'가 있었기에 자존심을 버리고 순종할 수 있었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가 그의 인생의 轉禍爲福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 '그러나'는 언제나 고통과 아픔을 가져다 주지만 축복이 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인생에 '그러나'가 단순한 고통과 아픔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인생에 '그러나'가 축복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 축복의 통로 - 어린 소녀
나아만은 자신의 인생 가운데 찾아온 '그러나'를 통하여 고칭을 받고 하나님을 만나는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나아만이 고침을 받고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혀 온 어린 소녀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 어린 소녀가 아니었다면 나아만은 결코 고침을 받을 수도 없었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었습니다.
이 어린 소녀는 전쟁 중에 포로로 잡혀와 나아만의 집에서 隨從을 들고 있었떤 어린 소녀입니다(2절). 그러나 얼마나 可憐하고 불쌍한 소녀입니까? 그런데 이렇게 보잘 것 없고 가련한 소녀가 나아만이 고침을 받고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 쓰임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이 소녀가 어떻게 쓰임을 받았습니까? 어느 날 이 어린 소녀가 나아만 장군의 부인에게 사라미아에 있는 엘리사 선지자를 소개한 것입니다(3절). 사라미아에 있는 선지자를 만나면 고침을 받게 될 것이라는 이 소식은 나아만에게는 복음이었습니다.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래서 나아만은 이 어린 소녀로부터 들은 이 기쁜 소식을 왕에게 보고하였고 왕이 써 준 편지와 禮物을 가지고 사마리아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고침을 받게 된 것입니다. 만일 나아만이 이 어린 소녀를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나아만은 나병환자로서 세상으로부터 隔離되어 살다가 외롭게 悲慘하게 인생을 마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어린 소녀로 인하여 고침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어린 소녀는 나아만과 그의 가정과 아람이라는 나라에 축복의 통로로 쓰임을 받은 것입니다.
□ 누가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을 수 있는가?
첫째로, 주님에 대한 믿음을 가진 자입니다.
이 어린 소녀가 축복의 통로로 쓰임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 소녀는 사마리아에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가면서 주인이 하나님께서 그 선지자를 통하여 주인의 병을 고쳐 주실 것이라는 確信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주인에게 그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소녀에게는 하나님께서 고쳐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축복의 통로로 쓰임을 받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로, 誠實한 삶의 자세를 가진 자입니다.
이 어린 소녀는 적국의 나라에 포로로 잡혀와 종살이를 하고 있었지만 자신의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였던 그런 소녀였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 어린 소녀가 평소에 요령이나 피우고 거짓말이나 해대교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주인이 자기 집에서 일하는 계집종의 말을 들었겠습니까? 平素에 이 어린 소녀가 자기 인생을 悲觀하고 주인에 대하여 憎惡心을 품고 빈둥 빈둥 요령이나 피우고 그렇게 생활했다면 주인이 그녀의 말을 信賴했겠습니까? 그런데 주인은 포로에서 잡혀온 이스라엘의 어린 소녀의 말을 믿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이 어린 소녀가 얼마나 성실한 삶을 살아왔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셋째로, 矜恤히 여기는 마음을 가진 자입니다.
축복의 통로로 쓰임을 받았던 이 어린 소녀는 자기 주인 나아만이 나병에 걸려 살이 썩어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자기 나라를 공격하고 자신을 포로로 잡아 온 적군의 군대장군이 나병에 걸렸다고 해서 속으로 快哉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많이 배운 사람만, 權力을 가진 사람만, 卓越한 恩賜와 능력이 있는 사람만 축복의 통로로 쓰임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배우지 못한 사람도 가난한 사람도 신분이 낮은 사람도 이 어린 소녀처럼 얼마든지 축복의 통로로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을 신뢰하는 분명한 믿음이 있고 영혼을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는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있고 성실한 삶의 자세로 신뢰를 얻는 삶을 살아간다면 축복의 통로로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축복의 통로로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우리 시대와 우리 민족 가운데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시대에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
'오륜교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생각을 내려 놓으라 <2011.3.20 / 제23권 12> (0) | 2011.03.20 |
---|---|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라<2011.3.13 / 제23권 11호> (0) | 2011.03.20 |
옛 사람을 벗어버리라<2011.2.27 / 제 23권 9호> (0) | 2011.03.02 |
順從, 어려운가? 쉬운가?<2011년 2월 20일 / 제 23권 8호> (0) | 2011.02.26 |
順從은 習慣이다<2011.2.13. / 제 23권 7호> (0) | 2011.0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