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 20:20~23> 그 때에 세배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는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23. 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은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 철없는 제자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도 유명해지고 높아지려는 인간의 한 욕심을 다루고 있습니다. 20절을 보면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두 아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나아와 간구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러면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두 아들과 더불어 예수님께 나아와 구한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21절)"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로마의 壓制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고 예수님이 통치하는 나라가 臨하면 자신의 두 아들을 가장 최 측근의 자리에 앉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우편에, 한 사람은 좌편에 앉게 해 달라는 말은 예수님 다음으로 최고의 높은 자리에 앉혀 달라른 것입니다.
그러면 야고보와 요한만 이런 생각을 가졌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모두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주의 나라에서 높은 자리를 요구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다른 열 제자들은 분노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제자들 모두가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서로 높은 자리를 앉게 해 달라고 요구하며 다투던 때가 언제입니까? 20절에 보면 "그때" 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그때는 언제입니까? 예수님께서 자신의 수난과 죽음에 대하여 말씀하셨을 때입니다. 바로 그 때에 제자들은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앉을 것인가를 구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부모의 임종을 앞둔 그 자리에서 자식들이 서로 재산을 가지고 다투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얼마나 철없는 제자들이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예수님은 서로 높은 자리를 구하는 그들에게 "너희가 도대체 무엇을 구하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22절). 왜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그들이 구한 것은 이 땅에서의 성공과 출세와 명예와 부와 권력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주님이 이루실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그리고 주의 나라에서 큰 자가 되고 으뜸이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하고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제자들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도 주님께서 보실 때 무엇을 구하는지 알지 못하는 기도를 드릴 때가 많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정말 구해야 할 것은 구하지 못하고 구해서는 안될 것들을 구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기 보다 세상에서의 출세와 성공과 부와 영광을 구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왜 우리가 그토록 많은 기도를 드리지만 응답이 적습니까? 情欲으로 구하기 때문입니다(약4:3).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복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복이 정욕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이 정욕으로 사용되면 도리어 그 복이 화가 되고 저주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렘14:11)"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지 아십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 길을 멈추지 않고 걸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렘14:10). 어그러진 길은 잘못된 길입니다. 범죄한 길입니다. 하나님께 등을 돌린 길입니다. 넓은 길입니다. 사망의 길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 길을 사랑하며 멈추지 않고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고난 주일에 정말 나는 주님이 원하는 것을 구하고 있는지 아니면 예수님의 두 제자처럼 잘못된 것을 구하고 있는지를 점검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야고보와 요한처럼 정욕을 따라 자기 영광과 자기 만족을 위하여 세상의 권력과 부와 명성을 구하고 있다면 우리는 지금 잘못된 것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내가 구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 나의 잔을 마실 수 있느냐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22절b)"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는 예수님의 이 물음에 제자들은 놀랍게도 ,Yes라고 대답했습니다. "할 수 있나이다"라고 너무나 쉽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물음에 쉽게 대답한 것을 보면 예수님이 마시는 잔을 왕과 함께 식사하는 영광스러운 어떤 것으로 생각한 것처럼 보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마시려는 잔이 어떤 잔인지를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잔의 의미를 그들이 바로 알고 있었다면 그렇게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말씀하신 이 잔을 무엇을 말합니까? 예수님이 마시려는 잔은 십자가의 苦難과 십자가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성경을 보면 주님이 말씀하신 잔이 성찬을 제외하고 세 번 나옵니다. 그런데 이 잔이 모두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주님은 이 잔을 피하지 않고 기꺼이 마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고난의 잔을 자원해서 마셨습니다. 주님은 이미 가롯 유다가 자기를 배신하고 대제사장과 함께 자기를 잡기 위해 흉계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계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자신이 말씀하신 것처럼 하늘에 있는 12영이나 되는 천사들을 동원하였다면 얼마든지 십자가의고난과 죽음 을 피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하늘의 천사들을 동원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일 주님께서 하늘의 천군천사들을 동원하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주님을 배신하고 조롱하고 십자가에 못박던 모든 자들이 한 순간에 죽임을 당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늘의 능력과 권세를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죄 값을 치루시기 위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기꺼이 마셨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고통을 당하시고 짓밟힌 장미꽃처럼 버림받고 외면당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그 잔을 마셨습니다. 그런데 그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히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22절b)" 내가 마신 그 잔을 너희도 마실 수 있느냐?라고 물으십니다. 내가 너를 위해 이 잔을 마셨는데 너도 내가 마신 그 잔을 마실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이 물음에 여러분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나의 마시려는 잔을 마실 수 있느냐"는 이 물음은 곧 주를 위해 고난을 받고 逼迫을 받고 손해를 당하고 왕따를 당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고 주님이 맡기신 그 십자가를 지고 주님 걸어가신 그 좁은 길을 걸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이 고난 주일에 주님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나의 잔을 마시려느냐"이 물음에 대한 여러분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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