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5:17
□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왜 우리 인간 세계에 죄가 들어왔습니까? 왜 우리 인간 세계에 모든 사람이 슬퍼하고 두려워하는 죽음이 들어왔습니까? 누가 이 부분에 대하여 속시원하게 대답해준 사람이 있습니까? 인류 역사를 보십시오. 아무도 이 물음에 대답해 준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한 사람의 犯罪,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사망이 인간세계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2절, 17절). 그렇다면 여기 나오는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바로 인류의 시조인 첫 사람 아담을 합니다. 그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들어오고 그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모든 인간들에게 사망이 왕노릇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태어날 모든 인간들을 대표한 사람으로서 언약을 어겼기에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 가운데 죄가 들어오고 아담의 모든 후손들 가운데 사망이 왕노릇하게 된 것입니다.
□ 사망이 왕 노릇하다
왕 노릇하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왕이 다스리듯 사람들을 다스려왔다는 것입니다. 사망이 왕노릇하였다는 말은 사망이 왕처럼 군림하여 다스렸다는 말입니다. 절대 군주시대에 왕의 명령을 거스릴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짐이 곧 국가인데 누가 왕의 명령을 거스릴 수 있습니까? 이렇게 왕의 명령을 아무도 거스르지 못하는 것처럼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우리 인간은 아무도 죽음의 법을 거스릴 수가 없었습니다. 누구도 이 죽음을 拒逆할 수가 없었습니다. 죽음이 싫다는 것을 것을 알면서도 죽음이 두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누구도 이 죽음을 거역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망은 왕처럼 無所不爲의 權勢를 가지고 우리 인간들을 다스려 왔습니다.
□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라
그런데 사망이 왕노릇하던 시대는 끝이 났습니다. 사망이 統治하던 시대는 이제 끝이 났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復活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시는 날 사망이 생명에 삼긴바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 15:54에서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약속된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했습니다. 빛이 臨하면 칠흙같이 어두운 黑暗도 물러가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이 사망을 삼키고 이기신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죄가 이 세상에 들어오고 사망이 왕노릇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둘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의롭다하심을 얻고 생명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자는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그 부활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옯겨지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 5:24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5:24) 정말 여러분이 예수를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사람입니다. 미래에 옮겨질 것이 아니라 이미 옮겨진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를 믿는 순간 죽어 있던 내 영이 예수님 안에 있는 부활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음을 말합니다.
□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서 왕노릇하게 되었습니까?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그 왕되신 주님과 연합이 됩니다. 그분은 나의 머리가 되고 나는 그분의 몸이 됩니다. 이렇게 왕이신 주님과 내가 연합이 되었기에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고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망에서 생명을 옮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사람들로부터 排他的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한 분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을 수 밖에 없고 한 분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게
□ 생명 안에서 왕노릇한다는 것은?
왕 노릇한다는 말은 왕처럼 지배하고 다스린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생명 안에서 왕노릇한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니까?
1. 미래적 의미 - 주님과 함께 심판을 하게 되는 것.
"왕 노릇하리로다"는 단어가 미래 時制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 날에 심판주가 되시는 주님과 함께 세상을 심판하고 墮落한 천사들을 심판하게 될 것을 말합니다(계20:6). 주님이 재림하는 날 우리는 왕같은 신분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왕이신 주님과 더불어 하늘의 수 많은 천군천사를 號令하며 세상과 타락한 천사들을 심판하게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2. 현재적 의미 - 새 생명의 능력으로 사는 것.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는 것은 주님이 재림하심으로만 이루어지는 사건이 아닙니다. 지금 예수의 부활의 생명을 가진 자는 이 땅에서도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땅에서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그것은 바로 새 생명의 능력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곧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사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죽음의 문제만이 아니라 크고 작은 인생의 두려움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사는 것입니다. 사람 앞에서 萎縮되지 않고 문제 앞에서 唐惶하지 않고 堂堂하게 사는 것입니다. 바로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 누가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는가?
어떤 자들이 생명 안에서 왕노릇을 합니까? 더욱 은혜와 意義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입니다(17절). 여기서 말하는 의의 선물은 바로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게 된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선물로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의의 선물' 이라고 말하고 '은혜'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을 가져다 주는 인생의 작은 죽음들 앞에서 두려워하지 말고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왕처럼 당당하게 사는 것이 바로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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