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무엇이 보이는냐? <기독신문. 2010.5.19.수>

꿈 꾸는 소년 2010. 8. 4. 16:32

□ 막 8:22 ~ 25

 

" 위대한 하나님 사명 바로보자"

 예수님께서 한 맹인에게 왜 두 번에 걸쳐 안수하셨을까요? 전후 문맥을 통해 마가복음에서 가르치려 하는 의미와 意圖를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도시락 가져오기를 잊은 상황이 14절부터 나옵니다. 제자들은 떡이 없음에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마음이 둔한 제자들을 책망했습니다. 동일한 사역에 헌신하고 있지만 희미하게 보이는 소경처럼 주님과 같은 마음을 갖지 못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깨닫게 하기 위함 입니다. 우리의 눈이 제자들처럼 明確하게 밝지 못하고 주님의 뜻과 계획을 제대로 헤아맂 못하고 있다면 다시 안수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물으실 때, 베드로는 '그리스도'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과 부활을 가르쳤을 때 베드로는 항변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베드로를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며 꾸짖었습니다.  열심 있는 자들이 제대로 눈을 뜨지 않고 희미하게 볼 때 교회가 어지러워집니다.  밝은 눈을 제대로 갖지 못한 자들 때문에 교회와 교단이 어지러워지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봐야 합니까? 주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구원을 성취하신 것처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위대한 사명을 보아야 합니다. 교회가 무기력한 이유중 하나는 사명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명이 없으니 부질없는 것에 많은 힘과 시간과 재정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사명은 생명을 구하는 것이며, 주님으 재림고 심판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 우리으 사명입니다. 이것은 법과 관습보다 더 우선돼야  할 사명입니다.

 세상의 걱정과 정욕으로 어두워진 눈을 성령으로 안수 받아 다시 밝히 보이데 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와 교회, 교단을 향한 본질적 사명을 깨달아야 합니다. ◑

 

- 이승희 목사( 반야월교회)